지금까지 우리는 사이시옷을 적는 것이 우리 발음 때문임을 확인했다. 정리하면 우리가 ‘머릿속[머리쏙]’처럼 ‘속’을 된소리로 발음하거나 ‘윗마을[윈마을], 깻잎[깬닙]’처럼 ‘ㄴ’을 덧내어 소리 내기에 ㅅ을 적는 것이다. 이때 이 단어 속에는 하나라도 고유어가 포함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익혔다. 이렇게 맞춤법 원리를 정리해 놓고 보면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것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찻잔’과 ‘해님’이다.
먼저 ‘찻잔’을 보자. 발음을 확인하기도 전부터 이상하다. ‘차(茶)’도 한자어이고 ‘잔(盞)’도 한자어이다. 아예 ‘ㅅ’이 들어갈 환경이 아니질 않은가? 그런데도 ‘찻잔’이 올바른 표기라니 당황스러운 것이 당연하다. 시선을 돌려 ‘필(筆)’이라는 한자의 새김을 보자. 이 새김은 ‘찻잔’에 ‘ㅅ’을 쓰게 된 사연을 말해준다.
― 筆 붓 필
오늘날 우리는 ‘붓’을 우리말로, ‘필’을 한자로 생각한다. ‘필’은 한자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붓’은 고유어인가? 다시 정확하게 질문한다면, 이 말은 처음부터 고유어였을까? 아니다. 붓은 원래 우리나라 물건이 아니다. 오랜 옛날 중국에서 들여온 것임에 분명하다. ‘붓’은 그 당시 물건과 함께 들어온 한자음이다. 이 말이 아예 우리말로 굳어져 나중에 ‘필(筆)’이라는 한자의 새김이 된 것이다. ‘차’도 마찬가지다. 새김을 보자.
― 茶 차 다/차 차
이 한자는 새김이 둘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더 익숙한 새김은 ‘차 다’이다. 앞서 본 ‘붓’만큼은 아니지만 ‘차’는 ‘다’라는 한자의 새김으로 고유어처럼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향을 받아들인 것이 ‘찻잔’이라는 표기다. 이 새김에서처럼 ‘차’가 우리말처럼 되었다는 판단에서 ‘ㅅ’ 표기를 허용한 것이다. ‘붓’이나 ‘차’처럼 외래어가 고유어처럼 인식되고 있는 단어들은 많다. ‘가방, 구두, 냄비, 담배, 빵’과 같은 말들이 그런 예이다.
우리를 황당하게 하는 다른 예인 ‘해님’을 보자. 이 단어는 ‘해’와 ‘님’이 합해진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핸님]이라 발음한다. 고유어가 포함되어 있고 ‘ㄴ’이 덧나니 ‘햇님’이라 적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앞서 정리한 것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하여야 ‘해님’의 맞춤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ㅅ’은 언제 적는가? ‘ㅅ’은 ‘∼의’의 의미를 가졌다. 기본적으로 이 ‘∼의’를 쓰려면 명사와 명사의 결합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해님’의 의미는 ‘해의 님’의 의미일까. 그렇지 않다. 해를 높이기 위해 ‘님’이라는 말을 붙인 것이다. ‘김○○’이라는 사람을 높이기 위해 ‘김○○님’이라 할 때의 그 ‘님’이다. 이때의 ‘님’은 명사가 아니다. 애초에 ‘ㅅ’을 쓸 수 없는 위치이니 ‘햇님’이라는 표기가 잘못된 것이고 발음 역시 [해님]인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다. ‘님(임)의 침묵’ 할 때의 그 ‘님’이라면 ‘햇님’이라 적을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좋은 질문이다. 이런 질문은 맞춤법 이해를 깊게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님(임)의 침묵’에서의 ‘임’의 의미는 ‘사모하는 사람’ 즉, ‘연인’의 의미를 가진다. ‘해님’의 의미는 ‘해의 연인’인가?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래서 ‘햇님’이 아니라 ‘해님’이 바른 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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