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인 6일 오전 9시경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의사상자 묘역의 한 묘비 앞에 두 가족이 모였다. ‘현충원 안장 1호 의사자’인 고 채종민 씨 묘비 앞. 채 씨 유족과 이정건(가명·51) 씨 가족이다. 이들 가족이 묘역을 함께 참배한 건 올해로 11년째. 대학생인 두 딸, 부인과 현충원을 찾은 이 씨는 “우리에겐 현충일이 가족모임 하는 날”이라며 웃었다. 숨진 채 씨가 2006년 바다에서 구해냈던 이 씨의 막내딸은 이날 오지 않았다. ▶본보 6월 6일자 A2면 참조.
오랜만에 만난 친족처럼 일상 이야기를 주고받던 두 가족이 채 씨 이야기를 꺼냈다. 둘째 형 종오 씨는 “종민이가 의사자로 선정되는 정건 형님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타지 사람이 진도 아이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을 진도군에 알리고, 채 씨를 의사자로 선정해달라며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주민 서명을 받은 것도 이 씨였다. 이 씨는 “진도군청을 참 많이 왔다 갔다 했다”며 웃었다.
채 씨가 현충원에 묻히게 된 건 어머니의 선택이었다. 채 씨가 의사자가 되자 서울현충원 납골당에 안치될 수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땅을 쓰다듬을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며 이곳 현충원을 택했다. 아들이 묻힌 땅이라도 만지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이후 서너 달 안장 심사를 거쳐 2007년 현충원 의사상자 묘역에 안치됐다.
채 씨가 묻힌 국립대전현충원은 채 씨의 아버지와도 인연이 있다. 종오 씨(49)는 “아버지가 현충원에 오실 때마다 ‘현충탑 근처의 나무를 내가 심었다’고 말씀하시곤 했다”고 전했다. 조경업을 하던 채 씨 아버지는 1985년 현충원 완공 당시 나무를 검수한 후 직접 심었다. 32년 전 심은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 매년 가족을 맞이하고 있다.
이 씨는 “기사에 ‘벌꿀’ 이야기가 안 들어간 게 아쉬웠다”고 운을 뗐다. 노년에 장성군 자택에서 양봉을 하던 채 씨 아버지는 이 씨가 집을 들를 때마다 벌꿀 한 말(12병)을 챙겨주셨다고 한다. 이어 채 씨 아버지가 좋아했던 김 씨의 ‘알타리 김치’가 화제에 올랐다. 종오 씨는 “형수님이 보내준 알타리 김치는 늘 아버지가 혼자 다 드실 정도였다”고 했다. 채 씨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도 아들과 통화할 때 이 씨 가족과 친형제처럼 지낼 것을 당부했다.
두 가족이 오랜만에 재회한 대전에는 오전부터 비가 내렸다. “형님 진도에도 비가 많이 오겠죠?” 식당에서 창 밖을 바라보던 종오 씨가 이 씨에게 말을 건넸다. “많이 와야지. 가뭄이 심했는데 이제 모내기 할 수 있겠네.” 이 씨가 대답했다. 종오 씨는 “다음에 아이들 데리고 진도에 놀러가겠다”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대전=위은지기자 wizi@donga.com 위은지기자 wiz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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