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이중생활’ 하버드大 합격생 퇴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7일 03시 00분


비공개 채팅방에 음란 글 올려… 성폭행 이미지-소수인종 공격도
신입생 10여명에 “합격 취소”… 학교측 “도덕성 검증 권리 있다”

미국 뉴욕의 명문 공립고교 중 하나인 A고에선 매년 50여 명이 아이비리그(미 동부 지역의 8대 사립 명문대)에 진학한다. 이 학교 11학년(한국의 고2)인 B 양(17)도 아이비리그 진학을 목표로 하는 모범생. 그런데 B 양은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에선 ‘이중생활’을 한다. 실명(實名) 계정에선 건전하고 학구적인 대화만 주로 하지만 가명(假名) 계정에선 싫어하는 급우에 대한 험담이나 욕설 같은 비교육적 내용의 글을 자주 올린다.

사생활의 영역에 속하는 소셜미디어 활동이 지금까지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명문대 진학을 꿈꾼다면 좀 더 신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이비리그의 대표 대학 격인 하버드대가 페이스북 비공개 그룹채팅방에서 노골적인 성적(性的) 대화와 사진을 주고받고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사실이 발각된 입학예정자 10여 명에 대해 합격을 취소했다고 이 학교 교지인 ‘더 하버드 크림슨’이 5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하버드대 조기 합격자들을 위한 공식 페이스북 그룹방을 통해 알게 된 합격생 중 일부는 ‘성적으로 흥분한(horny) 부르주아 10대를 위한 하버드 밈(meme)’이라는 별도의 비공개 그룹채팅방을 만들었다. 밈은 인터넷상에서 퍼 나르는, 흥미로운 글이나 이미지를 일컫는 용어. 문제의 그룹채팅방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합격생 카산드라 루카 등은 크림슨과의 인터뷰에서 “100여 명이 참여하는 1차 채팅방에선 대중문화 같은 서로의 관심사가 화젯거리였는데 몇몇 학생이 ‘성인물 등급의 노골적인 밈을 올리자’고 제안했고, 그들끼리의 2차 채팅방이 생겨났다”고 전했다.

이후 문제의 채팅방엔 노골적인 성적 메시지는 물론이고, 성폭행이나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와 관련된 이미지나 아동 학대를 성적으로 흥분되는 일로 묘사한 글까지 올라왔다. 특정 종교나 일부 소수 인종을 공격하는 메시지도 있었다고 크림슨은 전했다. 일부 합격생은 “(채팅방) 주도자들은 ‘우리가 명문 하버드대에 합격했다고 해서 이런 장난조차 못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결국 하버드대 당국은 자체 조사를 거쳐 문제의 메시지나 사진들을 주도적으로 올리거나 퍼 나른 합격생 10여 명에게 e메일로 합격 취소 통지를 보냈다. 문제의 그룹채팅방의 존재를 뒤늦게 파악하고 4월 중순 입학 허가 철회를 개별 통보한 것이다. CNN은 “이미 입학 허가를 받은 학생이라도 그들의 정직성, 도덕성, (지적) 성숙함에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한 경우 그 합격을 취소할 수 있는 권리가 대학에 있다”며 “그러나 (하버드대는) 개별 합격자에 대한 구체적 처분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하버드대의 올해 경쟁률은 19.2 대 1로 합격률은 5.2%에 불과했다. 문제의 수재들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수준’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서도 과거 소셜미디어에 남긴 글이 문제가 돼 마지막 순간에 발목을 잡힌 셈이다.

하버드대에선 앞서 5월에도 교양과목인 ‘컴퓨터과학 입문’ 수강생 중 60여 명이 시험 중 커닝, 과제물 표절, 같은 내용 리포트의 이중 삼중 제출 등 각종 부정행위 관련 혐의를 받고 학교의 ‘명예 위원회’에 회부되기도 했다. 이들 중 일부는 조사 및 심사 결과에 따라 퇴학 처분될 수 있다고 학교 측은 전했다.

하버드대만 유별난 게 아니다. 미국의 한 입시정보기관이 대학 입학사정관 3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35%가 ‘지원자의 소셜미디어 내용을 확인한다’고 답했다. 42%는 ‘소셜미디어 계정에서 비교육적이고 부적절한 내용을 확인했을 때 입학 심사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미국에선 대학 진학 희망자와 대학 당국 간 ‘소셜미디어 숨바꼭질’이 현실화되고 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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