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최지훈]모양마저 다른 필리핀 초승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7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김보근 기자 paranwo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보근 기자 paranwon@donga.com
최지훈 호호스프 대표
최지훈 호호스프 대표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부상의 위험을 줄이고 더 나은 동작을 만들어 낼 수 있게 해준다는 이유에서다. 재밌게도 스트레칭이 필요한 곳은 근육만이 아닌 듯하다. 고정관념에 쉽게 빠질 수 있는 우리의 머리도 꾸준한 스트레칭이 필요해 보인다. 사고를 유연하게 하여 오류를 피해 가고, 더욱 창의적인 생각을 가능케 하는 뇌 스트레칭. 뇌 스트레칭에는 여행이 적격이다.

나에게 해외여행은 경품 당첨과도 같은 이미지였다. TV에서나 볼 수 있는 딴 세상 이야기와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이제 여기가 그 딴 세상이다. 우리에게 해외여행은 이미 놀라운 일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보면 셋 중 하나는 외국에 나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드디어 현실성 있게 다가온다. 30대에 격세지감을 느낄 줄이야.

태어나 처음 비행기에 오르던 그 순간이 잊혀지질 않는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려 꽤 쌀쌀한 여름밤이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앞에 선 비행기 때문인지 몸이 떨리고 있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터널식 복도를 지나자 비행기 입구가 보였다.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승무원들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보기보다 편한 의자에 앉아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창이 두꺼워 아래를 내려다보기 힘들었다. 창에 묻은 얼굴 기름을 연신 닦아냈다. 뒤에서 당기는 듯한 추진력을 느끼는 순간 공중으로 떠오른 나는 순식간에 하늘을 날고 있었다. 나와 내 친구는 소리를 내며 박수쳤다. 크게 제지하지 않는 어른들을 보며 그들도 내심 환호하고 싶은가 보다 생각했다. 잠시 떴다 내린 비행기는 금세 울산에 도착해 있었다.

한 여행사의 통계를 보니 올 5월 해외여행객 수가 작년 대비 24.4% 증가했다. 아마도 5월 초에 있었던 황금연휴가 여행객을 불러 모았을 것이다. 연휴가 길어지면 너 나 할 것 없이 해외여행을 생각해 본다는 이야기다. 해외여행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던 시절이 완전히 끝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경비 면에서 국내 여행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문화가 다른 사회에 들어가 생활해 보면 생각의 폭이 넓어진다. 느끼지 못하고 지내던 사고의 틀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언젠가 필리핀에서 달을 보며 놀란 기억이 난다. 초승달이 아래로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다른 나라라 하더라도 달의 모양까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한 터였다.

어려서부터 봐왔기에 큰 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많은 것들이 절대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은 국경을 넘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아래로 휜 초승달이나 좌측통행하는 차량 등 다른 것이 너무 많다. 뇌가 스트레칭 하는 기분이 드는 순간이다. 사시사철 상큼한 과일이 나는 따뜻한 나라에는 김치가 필요 없다는 걸 가보지 않고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접하기 쉬워진 덕에 해외여행을 처음 경험하는 연령이 내려가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보고 느낀 다양한 문화는 사고의 폭을 넓히는 중요한 밑받침이 될 것이다. 폭넓은 사고는 곧 그 사람의 여유로 나타난다. 많은 경우의 수를 이해하고 있을수록 쉽게 흥분하지 않고 원만히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 이 같은 사람이 다수를 이룰 때 사회가 평화로워질 것은 분명하다.

외국 문화 혹은 외국인을 어색해하지 않는 세대가 자라나고 있다. 그들과 함께 살아갈 미래가 기대된다.
 
최지훈 호호스프 대표
#필리핀#해외여행#생각의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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