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사교육 유발자 누군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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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몇 개 틀리면 SKY(서울 고려 연세) 대학에 갈 수 있나요?” 서울 강남 8학군의 한 고교 진학상담실에 종종 걸려 오는 전화 질문이다. 본인 소개는 물론이고 자녀의 신상은 일절 밝히지 않고 다짜고짜 이렇게 묻는다는 것이다. 상담 교사는 마음속으로 ‘학력고사 세대 부모구나’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교사가 속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수능과 학력고사의 기본 틀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40대 후반∼50대 중반 학부모들은 대체로 학력고사 점수에 따라 대학과 학과를 선택했다. 학력고사 자체도 암기 위주의 사지선다형 객관식이었다. 이 세대가 수능 성적통지표의 표준점수, 백분위, 등급을 단번에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수능 응시과목별 반영 비율도 대학마다 제각각 다르다. 서울대는 과학탐구Ⅱ를 한 과목 이상 치러야 지원할 수 있다. 간혹 이과 수능 만점자가 서울대 의대를 못 가고 연세대 의대로 발길을 돌리는 이유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대입 컨설팅 개설 바람이 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1학년도 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꾸겠다고 공약한 데다 내년부터 고교 내신이 절대평가로 전환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새 제도의 ‘실험 대상’이 될 중학교 3학년 학부모들은 답답한 심정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수십만 원의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확정되지 않은 정책을 놓고 입시 컨설턴트인들 ‘밥 먹으면 배불러진다’ 이상의 무슨 뾰족한 비법을 일러줄까 싶다.


▷최근 EBS가 방영한 6부작 ‘대학 입시의 진실’ 2편에서는 ‘학부모 모의고사’를 치렀다. 입시 기본 사항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측정한 것이다. 100점 만점에 최고점은 100점, 최저점은 16점인데 사교육비를 많이 쓰는 부모들이 성적이 좋았다. 낮은 점수를 받은 한 엄마는 “자식한테 미안했다. 이런 상식도 모르면서 ‘너 대학 어떻게 갈 거야?’ 말할 자격이 없구나”라며 자책했다. 많이 줄었다고는 해도 대입 수시전형 방법만 900개가 넘는 나라에서 학부모들이 컨설팅학원을 찾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 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대학 입시의 진실#고교내신 절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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