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물이 얼마나 고마운 물인지, 내 몸속을 정화시키더란 말이야. 관절 당뇨 고혈압 환자들이 모두 희망을 갖게 됐다고….”
3월 초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의 한 사무실에서 김모 씨(57)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의 손에는 500mL짜리 생수병 한 개가 들려 있었다. 김 씨의 말이 끝나자 사무실에 앉아 있던 60, 70대 노인 수십 명의 시선이 일제히 생수병으로 쏠렸다. 김 씨는 “바로 신비의 기적수”라며 생수병을 가리켰다.
“세계 4대 성수보다 게르마늄이 풍부해 혈액암에도 탁월하다”는 김 씨의 말에 노인들은 앞다퉈 줄을 섰다. 2L 물 45통에 19만8000원을 지불했다. 1통 가격은 4400원. 같은 용량의 일반생수는 대형마트에서 1000원가량에 팔린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적수, 신기수라는 표현을 믿었다. 동생이 췌장암을 앓고 있다는 70대 남성, 성인병으로 고생하는 60대 남성 등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현금을 주고 물을 사갔다.
하지만 “암도 고친다”는 말에 의심을 품은 몇몇 사람이 경찰에 “수상하다”며 신고했다. 은밀히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기적수가 엉터리 물임을 확인했다. 경찰이 경기 가평군에 있는 기적수 생산공장을 확인한 결과 공정은 말도 안 되게 단순했다. 지하수를 퍼올려 어른 키높이 정도의 통에 담은 뒤 ‘천년초 즙’ 1봉지를 섞는 게 전부였다. 사실상 천년초 혼합음료인 셈이다. 일당은 이 물을 페트병에 나눠 담아 팔아 치웠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게르마늄은 조금도 들어있지 않았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임의로 혼합 음료를 만들어 팔고 허위 광고를 한 혐의(식품위생법 위반 등)로 생산업체 대표 염모 씨(53·여)와 김 씨 등 모두 1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8일 밝혔다. 이들은 2016년 9월부터 경찰 단속이 이뤄진 올 2월 말까지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사기 행각을 벌였다. 이들은 강원 춘천시와 대전, 대구 등에도 센터를 차려놓고 비슷한 일을 벌였다. 최근에는 다단계 방식으로 모집한 회원 1310명에게 제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벌어들인 돈은 5억250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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