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욱한 최루탄 연기 속에서 “독재 타도” “호헌 철폐”를 외치는 학생들,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구호를 따라하는 넥타이 부대, 쫓기는 시위자를 숨겨주고 음료수를 나눠주는 가게 주인들…. 전국 도심을 가득 메운 시위 물결에 결국 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약속하며 사실상 항복했다. 30주년을 맞는 6월 민주항쟁 기념식이 오늘 서울광장에서 열린다. 2007년 6월 민주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서울광장에서 기념식이 열리기는 처음이다.
특히 올해는 6월 민주항쟁으로 열린 한국정치의 ‘1987년 체제’가 30년 만에 시대적 소임을 끝내는 해이기도 하다. 5년 단임 대통령직선제로 대표되는 ‘87년 체제’는 문재인 정부 탄생까지 세 차례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광장의 평화적 촛불시위가 이끌어낸 초유의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은 제왕적 대통령제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던져줬고, 개헌을 통해 새롭게 ‘2017년 체제’를 연다는 국민적 합의도 이뤄졌다.
6월 민주항쟁을 이끈 학생운동의 주역인 86세대는 이제 문재인 정부의 핵심 요직에 포진했다. ‘적폐청산으로 촛불혁명 완성’을 내건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도 이제 40대 후반∼50대 초반이 된 86세대가 우리 사회의 주도 그룹으로 부상한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문 대통령도 5·18 기념사에서 “(문재인 정부는)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맥을 잇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6월 민주항쟁은 넥타이 부대로 상징되는 화이트칼라 중산층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당시 넥타이 부대는 지금 60, 70대인 이른바 ‘산업화 세대’다. 이들 중 상당수는 86세대가 주도하는 개혁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개혁은 우리 사회에 또 다른 세대 갈등과 분열을 낳을 수 있다.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대통합으로 청년 세대에게 희망의 미래를 물려줘야 한다.
이제 수명이 다한 ‘87년 체제’는 내년 6월 13일 지방선거에서 함께 실시되는 개헌 국민투표에서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권력구조 개헌 방향에 대해 여야 정치권은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 분산에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에선 제각각이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하고, 야당들은 6년 단임 또는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등으로 의견이 나뉘어 있다.
개헌 못지않게 선거제도 개편도 중요한 과제다. 각 정당의 득표수와 의석수 간 심각한 불(不)비례와 지역주의 정당을 낳을 수밖에 없는 소선거구제, 이를 개선하기 위해 마련됐지만 점점 축소돼 온 비례대표제의 개선은 개헌과 맞물려서, 또는 개헌에 앞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정치권의 합의와 국민적 공론화 등 갈 길이 멀다. 앞으로 1년,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에 빠듯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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