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인 한모 씨(24·여)는 원룸 월세 계약 만기를 3개월 앞두고 속앓이를 하고 있다. 집을 비운 사이 집주인이 맘대로 드나든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한 씨가 화가 나서 따지자 집주인은 “집 보러 오는 사람에게 방을 보여 주기 위해 예비 열쇠로 문을 열었다”며 “원래 방 뺄 때가 되면 다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도리어 그는 “어린 학생이 버르장머리 없이 어른한테 대든다”고 꾸짖었다. 하지만 임대인의 이 같은 행동은 주거침입죄에 해당한다.
청년들을 괴롭히는 건 단지 비싼 월세만은 아니다. 아직 사회생활에 익숙하지 않아 부동산 계약 및 집주인과의 관계에서 손해를 보는 일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청년 주거 지원 정책이 안정적으로 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부동산 관련 교육이나 법률 지원 등의 측면에서 ‘주거권 문맹’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다양화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청년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비영리단체인 ‘민달팽이 유니온’이 접수한 주거 상담 사례 중에는 임대차 계약 과정에 대한 문의가 유독 많았다. 집주인이 1년 계약하면 재계약 때 월세를 올릴 테니 2년 계약을 하자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월세 소득공제를 받으려면 월세를 더 올려 달라는데 이에 응해야 하는지 등이었다. ‘원상복구 의무’를 들이밀며 수리비를 요구하는 집주인에게 부당하게 보증금을 차감당하거나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도 빈번했다.
임경지 민달팽이 유니온 위원장은 “임대차보호법 의무기간이 2년이라든가 월세 소득공제는 임차인의 당연한 권리라는 기본적인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피해가 상당수”라며 “임대차 계약서 작성법을 모르는 대학생도 많다”고 말했다.
이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 청년을 대상으로 한 부동산 상담소도 인기다. 부동산 중개서비스 애플리케이션(앱)인 ‘다방’을 운영하는 스테이션3은 서울 관악구에 ‘다방 케어센터’를 열고 부동산 임대차 등의 상담을 무료로 해주고 있다. 지난달 8일 개소 후 최근 한 달간 400여 명이 다녀갔다. 박성민 스테이션3 본부장은 “예상보다 상담객이 몰려 휴일에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지난달 23일부터 주거 관련 비영리단체들과 함께 주거, 노동, 금융 등에 관한 청년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I.청년상담해.U’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청년 주거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선 집을 다량 공급하는 데 치중하는 청년 주거 지원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프랑스에서는 학생들이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해보는 등의 내용을 담은 주거권 교육 프로그램이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임 위원장은 “주거권 문제는 아는 게 ‘힘’인 정도를 넘어서 ‘생존’과 직결된다”며 “사회가 나서 대학생들의 생존권을 지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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