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비행기]할아버지의 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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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이산가족 찾기 방송. 동아일보DB
KBS 이산가족 찾기 방송. 동아일보DB
할아버지 품에서는 흐릿한 소주 냄새가 났다. 이유를 물으면 아빠는 늘 ‘북에 두고 온 가족 때문에’라고 설명하셨다. 이산가족 방송이 시작됐을 때 할아버지도 가족의 이름을 가슴에 품고 여의도광장으로 나가셨다고 했다. 1만 명이 넘는 사람이 가족을 찾았다. 멀리 미국에 있는 혈육까지 찾은 사람도 있었건만 야속하게도 할아버지가 품은 이름은 주인을 찾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금강산 관광이 시작됐다. 대학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할아버지를 금강산에라도 보내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돌아가시기 직전의 일이었다. 금강산 피격 사건으로 그나마 열린 길목도 굳게 닫혔다. 그 이후로 이산가족 상봉 뉴스는 차마 끝까지 볼 수가 없었다.

무심코 켠 TV에선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이지 중대’가 독일로 진격하고 있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에 짓눌린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할아버지의 삶인 양 눈에 들어왔다. 매년 6월 누군가의 전쟁은 반복된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kbs 이산가족 찾기#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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