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의 최고 유행어는 단연 ‘사이다’가 아닐까 한다. 속 시원하다는 의미를 담은 이 유행어는 널리 알려지기도 했지만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7년 1월 15일 비선 실세로 지목받은 최순실이 특검 사무실에 소환되면서 억울하다고 외칠 때 마침 그곳을 청소하던 아줌마가 “염병하네”라는 말을 던진 것이 TV 뉴스에 노출되었다. 지난 1년간 우리는 이런 사이다 발언과 인물에 울고 웃었다.
사이다 신드롬 현상은 진실이 왜곡되고 신뢰가 사라진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 한 글로벌 기업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신뢰지수는 인도나 중국, 심지어 마약 국가로 알려진 콜롬비아보다 낮다. 그런데 유럽 대부분의 국가와 미국, 일본도 낙제점을 받고 있다. 마침 영국의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뽑은 2016년 키워드도 ‘탈진실(post-truth)’이었다. 잘못된 정보로 만든 감성과 신념이 사회를 혼란시키는 것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따라서 이 세계에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필연적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막힌 체증을 뚫어주는 사이다는 신드롬이 된다.
거짓이 이성 대신 감성과 신념을 동원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을 거짓의 권력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왜, 지금, 이렇게 됐을까? 답은 간단하다. 우리 문명이 너무 많은 정보와 지식을 너무 편하게 유통하는 사회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우리가 압솔리지(obsoledge·쓰레기 지식이란 의미)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지적했던 건 2006년이다. 지금은 그보다 몇백 배나 많은 정보와 지식이 더 탁월해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개인화 매체를 통해 전파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조사에서 진짜 뉴스 2개와 거짓 뉴스 4개를 주었을 때 6개 모두 진실을 가려낸 응답자는 1.8%뿐이었다. 가짜 뉴스 통로 조사에서는 포털이나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진실 가리기가 어려운 매체들이 76.3%나 되었다. 이 상황을 악용하는 사람들은 증가하고 있고 거짓의 권력화는 태풍이 되었다. 개인의 지식이나 판단력 문제로 치부해도 안 된다. 거대한 쓰레기 정보 더미 속에서 대부분은 길을 잃는 것이다.
때로는 사이다 발언이나 인물의 인기조차 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집단적 감성이나 신념의 결과일 수 있다. 그렇다고 손놓아야 할까? 마이크로소프트사 창업자 가운데 한 사람인 스티브 발머가 1000만 달러를 들여 만든 ‘USA 팩츠’라는 웹사이트는 좋은 해결 방향의 하나다. 누구나 이곳에 접속해 키워드를 입력하면 미국 70개 정부기구에서 가져온 통계를 바탕으로 진실(팩트)을 보여준다. 마침 인공지능 기술처럼 거짓을 포착하기에 훌륭한 진화론적 도구들도 발전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짜 뉴스를 거르지 못하고 감정에 휘둘릴 때 끄떡도 않고 사실에 의거해 판단해 줄 것이다. 그렇다면 엄청난 정보에서 사실을 골라내주는 스마트폰 앱 하나가, 혹은 진실과 투명성을 감시하는 사회적 기구가 진짜 사이다 영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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