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다, 낳다’의 표기 혼동이 잦아졌다. 야단치기만 할 일이 아니다. 누군가 무엇을 혼동한다면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실제로 ‘낳다’와 ‘낫다’에는 복잡한 발음의 사연들이 들었다. 이 복잡성은 단어의 받침 ‘ㅎ, ㅅ’에서 온다. ‘낳다’부터 보자. ‘ㅎ’을 가진 말들을 좀 더 떠올리면 받침 ‘ㅎ’의 일반 원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낳다, 놓다, 닿다, 좋다, 쌓다, 많다, 않다, 닳다, 싫다, 뚫다, 앓다
이들 표기에 왜 ‘ㅎ’을 적을까? 소리 때문이다. 모두 ‘나타, 다타 … 뚤타, 알타’로 소리 난다. 기본형의 끝음절은 ‘-다’다. 그것이 ‘타’로 소리 난다는 것은 앞에 ‘ㅎ’이 있다는 의미다. ‘ㅌ’은 ‘ㅎ’과 ‘ㄷ’을 합쳐 소리 낸 것이니까. 이 때문에 받침에 ‘ㅎ’을 적는 것이다.
그런데 ‘-아, -으면, -으니’를 붙이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우리는 모두 ‘나아, 노아, 다아, 조아 … 뚤어, 알아’로 발음한다. ‘ㅎ’이 사라지는 것이다. ‘낳다’와 ‘낫다’를 혼동하게 되는 지점이다. 소리 그대로 ‘나아’로 적은 것이 ‘낫다’의 ‘나아’와 같아져 생긴 혼동이다.
이상한 질문을 해 보자. ‘낳아’를 소리 나는 대로 적으면 왜 안 될까?
지하철에서 ‘낳으면 나을까?’란 문구를 본 적이 있다. 아이를 낳으면 허리가 낫느냐는 맥락에서 쓰인 것이다. ‘ㅎ’을 빼 보자. 소리대로 ‘나으면 나을까’로 적어서야 의미 전달이 되질 않는다. 모음 앞에서든 자음 앞에서든 ‘ㅎ’을 밝혀 적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면 ‘낫다’를 보자. 이 단어 역시 모음 ‘-아, -으면, -으니’가 붙으면 ‘ㅅ’이 사라진다. 그런데도 ‘낫고, 나아, 나으면’으로 적어야 한다. 당연히 질문이 생겨야 한다. ‘낫다, 낫아(×), 낫으면(×)’로 적어야 의미 전달이 제대로 되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 앞서 본 ‘ㅎ’으로 끝나는 단어들은 모두 모음 앞에서 소리 나지 않았다. 우리의 발음은 그 규칙을 알기에 ‘낳아도’라 적어도 ‘나아도’로 발음한다. ‘ㅅ’은 그렇지 않다.
‘씻다’를 보자. ‘씨서, 씨스니’로 ‘ㅅ’이 소리 난다. 모음을 만나 받침이 뒷말의 첫소리로 나는 것이 일반적 규칙이다. ‘낫다’처럼 모음을 만나 사라지는 것은 이 일반적 규칙을 지키지 않는 몇몇 단어다. 이 몇몇 불규칙한 단어들은 달리 취급하는 것이다. 불규칙동사들은 소리대로 적는다. 대표적인 불규칙동사인 ‘묻고, 물어’를 보면 명확해진다. 이 단어를 ‘묻어’라고 적으면 곤란하다. 규칙적 원리를 따르는 ‘묻다, 묻고, 묻어서’와 혼동되기 때문이다. ‘낫고, 나아’로 적는 원리는 ‘묻고, 물어’를 적는 것과 같은 불규칙을 취급하는 원리다.
‘낫다, 낳다’의 혼동에는 이런 복잡한 사연이 들었다. 놀라운 점은 우리의 입이 이런 복잡한 법칙들을 제대로 지켜 말한다는 점이다. 어려운 맞춤법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 입의 도움을 빌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이들조차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이 복잡한 규칙을 지켜 제대로 소리 낸다. 아이들이 맞춤법을 제대로 지키게 하고 싶다면, 자신의 소리를 확인해 원리를 이해하는 과정을 경험하게 하여야 한다. 그것이 규범을 제대로 지키기 위한 사고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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