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칼럼]새로운 국가, 새로운 ‘판’을 꿈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2일 03시 00분


목표 달성에 온몸 던지고 이웃 도우며 불의에 항거까지… 이런 장점 지닌 우리 국민, 국가에 눌려 주인 노릇 못해
보수, 성장신화 못 벗어나고 진보는 개혁 조급증에 빠져… 모두 국가권력의 칼 놓지 않아
국민이 주역으로 춤추도록… 분권, 자율의 역할 모색할 때 개헌논의에 이런 미래 담아야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우리 국민은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그 하나는 성공을 향한 열정이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다.

특유의 까다로움도 큰 장점이다. 상품이건 서비스건 쉽게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으면 세계 어떤 나라의 소비자도 만족시킬 수 있다는 말이 돌 정도이다. 사회 전체가 ‘더 좋게 더 빠르게’, 그만큼 혁신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또 하나, 나눔과 배려 그리고 정의 등 공공선에 대한 생각도 강하다.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으면 십시일반 도움을 주고, 나라가 외채에 시달릴 때는 아이 돌반지까지 보탰다. 그뿐만 아니다. 정당하지 못한 권력에 항거하며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이만큼 키워왔다.

어떤가? 이만하면 괜찮은 국민 아닌가? 분권과 자율의 철학 아래 나라와 지역사회의 주인과 주역으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도 되는 것 아닌가? 국민보다 더 나아 보이지도 않는 대리인들, 즉 대통령 국회의원 관료들, 그리고 그들이 운영하는 관료기구에 의해 통치되고 규제되고 보호받게 두기보다는 말이다.

사실 오랫동안 국민은 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었다. 단순히 민주화되지 못한 세상에 살았다는 말이 아니다. 국가가 시장과 공동체 위에 있고, 그런 가운데 국민이 스스로 결정하고 처리해도 좋을 일까지 국가가 주도하는 세상을 살아 왔다는 말이다.

주변을 보라. 곳곳에서 국가는 앞에, 국민은 뒤에 있어 왔다. 대학은 교수와 학생이 아닌 교육부가 이끌었고, 시장·군수가 탈 차의 크기도 주민에 앞서 행정자치부가 정했다. 중소기업과 소비자 보호도 고발권을 독점한 공정거래위원회가 주도해 왔고, 주점에서 노래를 할 수 있느냐 여부도 주인과 소비자가 아닌 국가가 정해 왔다.

국가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안보 복지 공정거래 등 국가의 역할이 오히려 더 커져야 할 부분도 많다. 과거의 국가주도 성장 방식이 틀렸다는 말도 아니다. 여기저기 국민 스스로에게 맡겨도 좋을 영역에서까지 힘을 쓰니 문제라는 뜻이다.

힘이 먹히기라도 하면 다행인데 이 또한 그렇지가 않다. 시장과 시민사회가 그만큼 성장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흔히들 국가가 대기업과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를 통제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정말 가능할까? 그런 역량을 상실한 지는 이미 오래, 그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우리는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국가주도주의의 틀을 고수하고 있다. 우선 보수 쪽은 권위주의 시대의 성장신화, 즉 국가권력이라는 칼을 들고 이것저것 재단해 나가던 시절의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있다. 칼은 이미 무디어졌는데도 말이다. 길이 아닌 것을 길로 알고 있는 셈이다. 아니면 길을 잃었다고 할까.

진보 쪽은 사회주의적 철학과 개혁에 대한 조급함으로 국가권력의 칼을 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미 잘 들지 않는 칼, 무엇으로 이 칼을 갈 것인가? 쉽게 찾는 것이 대중주의와의 결합이다. 삶이 불안한 대중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약속하고, 노조와 시민단체와 연대하고, 언어와 스타일로 이들을 감동시킨다. 이들의 지지로 그 칼을 획득하고, 또 갈고자 함이다.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유럽과 남미 등에서 국가주도주의와 대중주의의 결합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봐 왔기 때문이다. 개혁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하겠지만, 이 또한 연정이나 정치적 협상으로 풀어야 할 일이지 대중주의와의 결합으로 풀 일은 아니다.

길은 하나, 모두 둘러앉아 지금과 같은 세상에 있어 분권과 자율의 기조가 얼마나 중요한지, 국가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또 시장과 공동체의 자율과 자정(自淨)의 메커니즘, 이를테면 대학은 교수와 학생이, 대기업과 대기업 노조는 중소기업과 중소기업 노조가 견제하는 체제를 고민해야 한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미 다른 많은 나라들이 그 길을 가고 있다.

마침 개헌 논의가 있을 예정이다. 같이 꿈을 꾸자. 국민이 주인이 되고 주역이 되는 분권과 자율의 세상, 그래서 모두들 있는 그 자리에서 서로를 돕고 견제하며 ‘성공을 향한 열정’과 ‘까다로움’, 그리고 공공선에 대한 의지를 다할 수 있는 세상, 그런 ‘춤판’을 꿈꾸자.

그리고 믿자. 그 분권과 자율의 ‘춤판’ 위에서 우리 각자 추는 춤이 정형 없는 ‘막춤’이라도, 그 속에 혁신의 씨앗이 있고 미래를 향한 길이 있음을.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
#민주주의#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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