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노지원]‘그림자 아이’ 페버, 꼭 추방해야 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3일 03시 00분


법무부, 강제퇴거 이의신청 기각… ‘따뜻한 법치’ 실천 고민해봐야

6월 3일자 1면.
6월 3일자 1면.
노지원·정책사회부
노지원·정책사회부
본보 ‘그림자 아이들’ 보도로 지난달 2일 잠시 자유를 찾았던 18세 미등록(불법 체류) 이주 청소년 페버가 결국 한국에서 추방될 위기에 처했다. 그가 4월 충북 청주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면서 낸 강제퇴거 명령 이의신청을 법무부가 지난달 23일 기각했기 때문이다. 페버는 “한국에서 나고 자라 부모 나라의 언어도 모른다. 생계가 막막한 동생들을 키워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법무부는 ‘불법 체류자는 불법 체류자’라는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페버는 억울하다. 1999년 한국에 머물던 나이지리아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9년간 합법적으로 살았다. 어려운 형편에 수돗물로 배를 채우면서도 성실하게 학업을 마쳤다. 페버가 9세이던 2008년 아버지가 나이지리아로 추방되면서 갑자기 ‘불법 체류’ 딱지를 달게 됐다. 불법 체류자인 아버지의 신분은 아들에게도 대물림됐다.

국제 인권법 전문가는 페버처럼 한국인같이 자란 이주 청소년에게는 추방의 공포 없이 안심하고 체류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아이들에게는 죄가 없기 때문이다. 이주 청소년은 인구 절벽을 넘어설 인적 자산이 될 수도 있다.

반(反)이민 정책을 거칠게 밀어붙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조차 전 정부가 만든 ‘불법 체류 청년 추방 유예(DACA)’ 행정명령을 유지하기로 했다. 영국은 부모가 모두 외국인이어도 아동이 만 10세 이상 만 18세 이하이고, 태어난 후 10년간 영국에서 거주하면 부모의 체류 자격과 무관하게 국적 취득 기회를 준다.

법무부는 누리집에 ‘인권을 옹호하고 따뜻한 법치를 실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인처럼 살아온 페버가 구금에 이어 추방당할 위협까지 받는 게 ‘따뜻한 법치’인가.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취임한 지 두 달이 다 돼 간다. 하지만 정작 인권 문제 주무 부처인 법무부는 따뜻한 법치를 실천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노지원·정책사회부 zone@donga.com
#법무부#페버#불법체류자#강제퇴거#나이지리아인#국제 인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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