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동거남에 석달간 폭행당해 실명-골절상 6세 남아 법정증언 “팔 꺾은 뒤 놀다가 다쳤다고 하라해”
아들은 끔찍한 사건 떠올리는데… 학대방치 30대 친모는 ‘무덤덤’
3일 오후 3시 40분 광주지법 목포지원 101호 법정 앞. 문 밖으로 “네”라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맑고 또렷한 아이 목소리였다. 잠시 후 법정 문이 열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3개월간 친모의 동거남에게 무차별 폭행당해 실명까지 한 A 군(6)이었다(본보 6월 5일자 A12면 참조).
A 군은 이날 증인 신분으로 법원에 왔다. 다만 증인석 대신 법정 옆 증인보호실에 있었다. 피고인석에는 A 군의 친모 최모 씨(35)와 동거남 이모 씨(27)가 앉았다. 이 씨는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 말을 듣지 않는다며 A 군을 8차례 폭행해 숨지게 하려 한 혐의(살인미수)로, 최 씨는 아들을 방치해 실명하게 만든 혐의(아동학대 중상해)로 각각 기소됐다. A 군은 아동보호기관 관계자와 블록놀이를 하며 화상통화로 전해지는 판사와 변호사 등의 질문에 답했다. 약 20분에 걸친 A 군의 증언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증언 내내 A 군은 이 씨를 ‘삼촌’으로 불렀다.
“삼촌이 눈만 아니라 몸통을 마구 때려 다 아팠어요.” “삼촌이 머리를 많이 때렸어요.” “삼촌이 (팔을 때리고 팔꿈치를 꺾었는데) 자전거를 타다 다쳤다고 거짓말을 하게 했어요.” “엄마한테는 맞았다는 말 못했어요.”
천진난만한 아이는 끔찍한 학대의 기억을 쾌활한 말투로 설명했다. 이 씨는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최 씨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변호인은 A 군의 쾌활한 답변이 아픔을 이겨내기 위한 안간힘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A 군은 지난해 10월 실명과 간 손상, 갈비뼈 골절, 양팔과 양다리 골절 등으로 입원했다. 이후 한쪽 고환이 손상돼 제거 수술도 받았다.
A 군의 증언 후에도 이 씨는 살인의 고의성을 부인했다. 최 씨는 태연히 “잠자는 줄 알았다”고 주장했다. 앞선 재판 때와 달라진 게 전혀 없었다. 재판부가 고심 끝에 어린 A 군을 증인으로 채택한 이유도 피고인들이 거듭된 재판에도 계속 혐의를 부인해서다. 아동학대처벌법(중상해)에 따르면 아동보호 전문가 등이 참석한 경우 아동의 영상진술이 증거가 될 수 있다. 피해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형법(살인미수)에는 이런 규정이 없다.
한편 한국여성변호사회는 변호사 9명을 참여시켜 A 군 학대사건을 공익소송으로 수행해 재판부에 의견서를 제출하기로 했다고 4일 밝혔다. 윤석희 한국여성변호사회 아동청소년특별위원회 위원장(53)은 “아동학대범에게 살인미수죄를 적용한 것은 드문 사례”라며 “이 씨가 3개월 동안 A 군에게 잔혹한 학대를 반복한 것은 살인미수 고의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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