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기 두 개가 붙은 모양의 초콜릿인데 한 쪽 막대가 짧다. 누가 잘라먹은 게 아니라 애초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 특이한 모양의 초콜릿은 이름하야 ‘양성평등 초콜릿.’ 긴 막대기는 남성, 짧은 막대기는 여성을 상징한다.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하 양평원)이 한국사회 성평등지수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기 위해 만든 아이디어 제품이다.
양성평등주간(7월 1~7일)을 앞둔 지난달 29일 서울 은평구 양평원 본원에서 민무숙 원장을 만났다. 민 원장은 최근 열린 한 포럼에서 국내외 인사들에게 초콜릿을 선보였고 큰 호평을 받았다며 “다들 창의적이라고 감탄했고 한 외국대사는 본인 고국에 가져가 알리겠다고도 했다”고 전했다.
성인지 교육을 주관하고 전문강사를 양성하는 공공기관이 뜬금없이 초콜릿을 만든 것은 일반 시민들의 낮은 성평등 인식 때문이다. 여성가족부가 매년 사회 각 분야 성평등 현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발표하는 성평등지수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의 점수는 70.1점(완전성평등이 100점)이었다. 가정 내 성평등 점수는 70점, 안전 분야 55.4점, 의사결정 분야 25.4점에 불과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고위공무원 교육에서 길이가 100 대 25.4인 ‘의사결정 초콜릿’을 나눠줬더니 한 남자 분이 ‘우리 집에서는 마누라가 다 결정한다’고 반박하더라”며 민 원장은 안타까워했다. 자신 주변의 특수한 상황을 일반화해 한국의 성평등 현실을 오인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민 원장은 사랑하는 남녀 간에 선물로 주고받는 초콜릿이 성평등 현실을 각성하는 선물이 되길 바랐다. 종합·가정·안전·보건·의사결정 5가지 종류, 5가지 맛으로 구성된 초콜릿은 지금은 교육용으로 배포되지만 호응이 좋을 경우 시중 판매도 고려해볼 계획이다.
민 원장의 ‘쉽고 재미있는 교육’ 철학은 초콜릿뿐 아니라 양평원의 일반 교육사업에도 반영되고 있다. 양평원은 올해부터 토크콘서트 방식의 교육을 도입했다. 조만간 성인지 교육을 담은 연극도 만들어볼 예정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여성가족부에 근무하며 대학교원임용 양성평등채용 법제화와 경력단절여성 재취업 지원 희망일터본부(현 새일센터의 전신) 설립에 일조했던 민 원장은 ‘제도의 개선’에 평생을 헌신한 사람이다. 양평원장 공모에 지원한 것은 이제 성평등 사회를 위한 다른 한 축인 ‘의식의 개선’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민 원장은 “국가의 제도 개선에는 한계가 있고, 개인이 불평등한 사회에 맞서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그런 사람들을 키워낼 수 있 다양한 교육방법을 강구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