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파리 회고전 이어 겹경사
“고암 이응노는 한국의 피카소…콜라주-조각 등 다양하게 보여줘”
4일 대전 서구 이응노미술관에서 ‘스위스로 간 이응노’ 전이 개막됐다. 프랑스 체르누스키 파리시립동양미술관에서는 ‘군중을 그리는 사람, 이응노’ 전이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동서양 동시다발의 회고전은 새로운 표현과 영감을 찾아 일본과 독일, 스위스, 프랑스를 주유했던 고암 이응노(顧庵 李應魯·1904∼1989)의 일생을 연상하게 한다. 세계 최고 권위의 파리 퐁피두센터(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가 또 다른 빅뉴스를 전해왔다. 9월에 이응노 개인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이다.
○ 파리서, 대전서… 이응노 회고전
미술계에서는 올해가 확실히 ‘이응노의 해’가 되리라는 데 이견이 없다. 이지호 이응노미술관장은 “퐁피두센터 전시를 계기로 이응노는 한국인으로는 백남준에 이어 세계미술사에 기록되는 작가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10월 15일까지 열리는 ‘스위스로 간 이응노’ 전은 이응노미술관 개관 10주년을 맞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1960∼70년대 이응노의 스위스 활동을 조명하기 위해 마련했다. 현지의 라쇼드퐁 미술관이 소장한 이응노 작품 중 7개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다. 당시 라쇼드퐁 미술관장이었던 세이라즈는 이응노에 주목해 작품을 매입하고 유럽의 유명 작가들과 공동 전시회를 열었다. 세이라즈는 이응노의 먹이 가진 추상적 특성과 서법에 내재한 추상적 붓놀림에 주목했다.
7개 작품 중 대표작인 ‘무제’는 1967년에 목재 부조 형태로 제작됐다. 이 관장은 이 작품을 통해 거장의 제작 철학을 전해준다. “선생은 작품에 쓰기 위해 산 나무를 베는 법은 없었다고 해요. 예술을 위해 생명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며 죽은 나무만 활용했죠. 손에 무리가 가는 데도 촉감을 놓치지 않으려 장갑도 사용하지 않았어요.”
전시에는 이응노와 당시 교류했던 조르주 마티유 등 유럽 거장의 다수 작품과 이응노의 스위스 활동상을 보여주는 신문기사와 팸플릿, 비디오 등도 선보였다. 8∼9월 중 전시연계 가족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열고 매주 수요일에는 ‘이응노 톡(Talk)’, 화∼일요일에는 도슨트 작품해설을 마련했다.
○ “이응노 세계미술사 등극” 기대감
파리 체르누스키 미술관 회고전은 지난달 9일 시작돼 11월 19일까지 열린다. 1950년대부터 1989년까지 이응노의 70개 작품이 9개 섹션에서 나눠 선보인다. 르 피가로 등 현지 언론들은 “20세기 서구와 극동 아시아의 문화적 교류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이응노를 기념하는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고 관심을 보였다.
퐁피두센터의 9월 전시는 이응노를 세계의 거장 반열에 올려놓을 것으로 기대된다. 퐁피두센터가 전시를 자체 기획하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이처럼 이응노의 위상이 크게 높아진 것은 그의 작품에 대한 연구와 평가가 그동안 유럽과 한국에서 꾸준히 진행돼 온 결과다. 미술사학자인 송미숙 전 성신여대 교수는 “이응노는 생애 동안 수묵화에서 서예, 콜라주, 도기, 조각, 판화, 태피스트리(직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와 양식의 변화를 보인 한국의 피카소”라고 평가했다. 이응노는 독일에 거주하던 1960년 동서양 회화의 접근에 큰 흥미를 보였다. 이는 그가 그해 1월 9일자 동아일보에 실은 기고문 ‘서독화단의 발전상’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는 동서회화가 아주 접근한 것을 알 수 있다. 가을로 들어서는 이곳 뮌헨이란 대도시에서 중국 고대 동양화의 대 전람회가 개최돼 많은 인사들이 보다 동양예술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 관장은 “이응노는 다양하고 많은 작품을 남겼고 동서양을 넘나들며 양식을 발전시킨 실험성과 시대정신을 반영한 창조성 등 거장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며 “그동안 선생의 작품과 자료를 수집해 연구하면서 그와 교류했던 세계적인 거장들과 공동 전시를 통해 위상을 확인시킨 노력들이 결실을 거두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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