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강정훈]흉악범 도주하는데 출국이라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7일 03시 00분


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경남 창원의 40대 주부 골프연습장 납치, 살인사건 주범들이 서울에서 검거된 3일 오전. 경남경찰청 형사부서는 이 사실을 3500km 떨어진 베트남으로 보고했다. 박진우 경남경찰청장이 앞서 이날 오전 10시 비행기로 출국해 그곳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 청장은 범인 검거 전에 근무지를 떠난다는 찜찜했던 마음을 떨치며 베트남 일정을 소화했다.

이 사건은 잘 마무리됐지만 수사 과정에서 범인들이 중부경남에 집중된 경찰 포위망을 뚫고 부산 대구를 거쳐 서울에 잠입하는 등 일부 허점이 드러났다. 또 한숨을 돌리기 무섭게 바로 다음 날 무장 인질극이 터졌다.

4일 오전 9시 반 고성에서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나선 김모 씨(40)는 진주의 경찰지구대가 보관하던 자신의 엽총을 찾아 경찰과 대치했다. 합천으로 이동한 김 씨는 경찰관들에게 엽총을 쐈다. 엽총을 아들에게 겨누며 순찰차를 탈취하고 차 바퀴에도 총질을 했다. 구급차와 남의 트럭도 빼앗았다. 상황이 이처럼 긴박하게 돌아가던 그 시간, 박 청장은 베트남 동나이성 경찰서를 찾아 현지 공안청 관계자와 점심을 먹었다. 한국 기업도 방문했다.

경남경찰청은 “당시 인질범과 대치하는 상황을 전화와 카카오톡으로 박 청장에게 전해 지휘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날 밤 12시까지도 인질극이 끝나지 않자 박 청장은 더는 베트남에 머물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경찰청 본청과 협의해 조기 귀국을 결정한 뒤 밤늦게 비행기에 올랐다. 이틀 앞당겨 귀국하자마자 5일 오전 10시 10분경 합천 황매산터널 인질극 현장으로 달려갔다. 사건 발생 만 하루가 지난 뒤였다.

전날 아들을 먼저 풀어준 김 씨가 이날 오후 4시경 경찰에 자수하면서 인질극은 막을 내렸다. 경찰관 200여 명이 밤을 새우고 터널 주변 교통을 통제했지만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순찰차를 빼앗긴 데 대한 논란은 있지만 아들의 목숨을 중시한 부분은 높이 사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전체적으로 경찰의 신중한 대응과 도주로 차단, 차분한 협상이 주효했다. 만약 박 청장이 지휘소를 지키며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면 더욱 좋을 뻔했다.

경남경찰청 관계자는 “국가 간 약속인 데다 4월에 확정된 일정이어서 고민 끝에 출국했다”며 “통신망은 계속 열어두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수사와 현장 대응은 경찰서장이나 기능별 지휘부가 담당한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백번을 양보하더라도 흉악범이 도주하는 와중에 박 청장이 출국을 강행한 대목은 납득하기 어렵다. 2차 범죄도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일사불란한 지휘체계 구축, 인근 지방경찰청과의 협의 등 그가 할 몫이 적지 않았다. 국민적 관심을 모은 경남의 사건들이 수습 국면에 접어들면서 경찰도 다시 한번 자세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시쳇말로 싸움에는 이기고 코피가 터져서야 되겠는가.

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manma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