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하다 만나 임대주택 생활… 원룸에 천장까지 쓰레기 빼곡
공무원 1년 설득끝에 청소 허락
‘찾아가는 동사무소’-주민단체 등 집 치우고 가재도구 새로 단장
부부의 숙원이던 결혼식 올려줘
6월 결혼식을 올린 배진화(왼쪽), 정재중 씨 부부가 6일 서울 영등포구의 확 바뀐 자택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6일 서울 영등포구의 주택 2층. 깔끔하게 정리된 20m² 정도의 원룸에 환한 햇빛이 들어왔다. 지난달 10일 결혼식을 올린 배진화(57), 정재중 씨(62)의 신혼집이다. 불과 5월까지만 해도 이 집은 현관에서 침대로 이어지는 좁은 ‘길’을 제외하면 천장까지 쓰레기로 가득했다. 부부의 저장강박증 때문이었다.
전남편과의 불화로 집을 나온 배 씨와 사업에 실패한 정 씨는 노숙을 하다가 만나 2004년 함께 살기 시작해 2015년 혼인신고도 했다. 10년 전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매입임대주택인 이곳에 자리 잡았다.
기초생활보장급여를 받던 이들은 생계에 보탠다며 틈날 때마다 재활용품을 수거했다. ‘괜찮아 보이는’ 물건이 눈에 띄면 하나둘씩 집으로 가져왔다. 곧 집을 가득 채웠다. 바닥에는 발 디딜 틈도 없어졌다. 냉장고에는 얼어 죽은 바퀴벌레들이 들어찼다. 배 씨는 “다 내다팔면 돈이 될 물건들이라 버리기 아까웠고 버릴 힘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랬던 부부가 저장강박증을 극복하고 뒤늦은 결혼식까지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을 담당하던 영등포본동 주민센터와 지역사회의 합심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이달로 시행 2년을 맞는 서울시의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가 있었다.
배 씨는 초혼인 남편이 결혼식 한 번 못해본 것이 못내 미안해 주민센터의 ‘우리 동네 주무관’인 최형욱 주무관에게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고 요청했다. ‘찾동’ 시행으로 만들어진 ‘우리 동네 주무관’은 동의 특정 지역을 전담하는 주민센터 직원을 말한다. 이 주무관들이 자신의 담당 동네 주민의 복지 등을 챙기게 한 것이다. 동네 주민들끼리도 서로 챙기도록 해 이를 맡아 이끄는 ‘복지통장’이라는 자리도 생겼다.
지난해 7월 상담하러 방문한 배 씨의 집이 잡동사니 아수라장인 모습에 깜짝 놀란 최 주무관은 “집부터 치우면 식을 올려주겠다”고 부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최 주무관과 복지통장은 “제때 버리지 않으면 돈이 아니라 쓰레기”라며 1년 가까이 부부를 회유해 마침내 청소를 ‘허락’받았다. 5월 12일 봉사자 50여 명은 4시간 동안 1t 트럭 7대 분량의 쓰레기를 치웠다. LH는 싱크대와 도배를 맡았고 영등포구 사회복지협의회에서는 옷장과 가스레인지를 지원했다.
집은 정리했고, 남은 것은 결혼식. 최 주무관은 빠듯한 예산으로 막막하기만 했다. ‘어머니가 입으시던 한복이라도 가져와야 하나’ 할 정도였다. 평소 지역을 함께 돌며 교류하던 복지통장 등에게 이런 고민을 알리자 마을네트워크가 작동했다. 웨딩드레스와 신부 화장은 영등포본동사회보장협의체의 도움을 받았다. 풍선 장식은 주민이 추천한 업체가 나서줬다. 김연주 동장은 지역 청소년오케스트라를 초대했다.
최 주무관은 “관(官)이 주도했다면 밋밋한 결혼식으로 끝났을 것”이라며 “배 씨의 집 정리와 마을결혼식은 ‘찾동’으로 민관 협력이 강화돼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찾동’의 목표는 복지 사각지대 해소다. 이를 위해 통·반장은 물론이고 배달업 종사자처럼 동네 구석구석을 잘 아는 지역주민과 협력해 복지 생태계를 마련하는 것이다. ‘우리 동네 주무관’이 복지통장, 주민자치위원,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과 조를 이뤄 권역별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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