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진잼의 ‘잼’은 재미를 줄인 말. 고단한 일상 속에서 몇 천 원 정도 쯤 탕진하면서 위안을 얻는 재미를 뜻합니다.
그러면 먼지잼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청소하는 재미일까요?
아닙니다. 먼지잼에서 잼은 ‘재우다’를 줄인 말입니다. 먼지를 재울 수 있을 만큼, 그러니까 겨우 먼지나 날리지 않을 정도로 조금 내리는 비가 바로 먼지잼입니다.
이렇게 비 종류를 나타내는 ‘토박이말(순우리말)’을 살펴보겠습니다.
제일 유명한 건 역시 ‘소나기’. 문자 그대로 ‘지나가는 비’입니다. ‘소낙비’ 역시 소나기와 같은 표준어니 공식 문서 같은 곳에 쓰셔도 됩니다.
안개하고 소리가 비슷한 ‘는개’는 ‘안개비보다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를 뜻합니다. 빗줄기 굵기로 따지면 안개비가 제일 얇고, 그다음으로 는개- 이슬비- 가랑비 순서입니다.
가랑비가 바람 없이 조용하게 내리면 보슬비가 됩니다. 같은 사전에 따르면 ‘보슬거린다’는 말 자체가 ‘눈이나 비가 가늘고 성기게 조용히 내린다’는 뜻입니다. 부슬비는 보슬비의 큰말입니다.
빗줄기가 제일 굵은 장대비가 오래도록 쏟아지는 장마를 예전에는 ‘오란비’라 불렀습니다. ‘오래다’의 옛말이 ‘오라다’였거든요.
장마 중에는 ‘건들장마’도 있습니다. 건들장마는 ‘초가을에 비가 오다가 금방 개고 또 비가 오다가 다시 개고하는 장마’를 뜻합니다. 사람이 무게 없이 행동하는 걸 건들거린다고 하잖아요? 가볍게 땅을 건드린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초가을에 선들선들 부는 바람 이름도 ‘건들바람’입니다.
오란비와 건들장마 사이에 내리는 비는 ‘잠비’라고 합니다. 한창 농번기지만 비를 핑계로 잠자기 좋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건들장마가 지나면 ‘떡비’가 내립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비 온 김에 떡을 해 먹으며 쉴 수 있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죠. 애주가에게 떡이 있는데 술이 빠지면 서운한 법. 농한기에 내리는 겨울비는 그래서 ‘술비’입니다.
장마가 끝나고 내리는 비 중에는 얼핏 비속어처럼 들리는 ‘개부심’도 있습니다. ‘장마로 큰물이 난 뒤,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퍼붓는 비’라는 뜻입니다. 개부심은 명개를 부시어 낸다는 의미인데요, 표준국어대사전에선 ‘흙탕물이 지나간 자리에 앉은 검고 고운 흙’이라고 풀이합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서울 광화문에는 여우볕이 끝나고 다시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집니다. 여우비가 볕이 든 상태로 잠깐 내리를 비를 뜻하는 것처럼 여우볕은 비나 눈이 오는 날 잠깐 나는 볕을 뜻합니다.
여러분이 계신 곳 날씨는 어떤가요? 탕진잼으로 겨우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여러분 마음 속에도 혹시 비가 오고 있나요? 혹시 그렇다면 적어도 이 ‘불금(불타는 금요일)’만큼은 그 비가 먼지잼으로 끝나길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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