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의료원 장례식장. 전날 오후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에서 발생한 광역급행버스(M버스) 7중 추돌사고로 숨진 신모(58) 설모 씨(56·여) 부부의 빈소에서 만난 신 씨의 조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날벼락 같은 사고로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은 30대 아들은 입관식을 마친 뒤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신 씨 부부는 10대 시절 봉제 일을 하면서 만나 결혼했다. 가정 형편은 넉넉지 않았지만 부부는 집과 일터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금실이 좋았다고 한다. 최근 남편은 신장병이 발병해 정기적으로 투석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신 씨는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부부가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 있는 작은 봉제공장에서 20년 넘게 함께 일하며 느끼는 소소한 행복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인 설 씨가 재봉틀로 옷감을 박음질해 넘기면 신 씨가 가위질과 다리미질을 해 수선 작업을 마무리하곤 했다. 공장을 운영하다 직원 인건비를 주지 못하는 등 여러 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부부는 함께 극복했다. 최근에는 사업도 안정을 찾았다.
부부는 슬하에 아들 하나를 뒀다. 외동이라 신 씨 부부의 사랑은 남달랐다. 봉제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대학 공부까지 시켰다. 취업에 성공한 아들(33)은 지난해 결혼해 현재 임신 7개월의 아내가 있다. 신 씨 부부는 3개월 후 첫 손주를 안아볼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늘 환하게 웃었다. 유족들은 “부부가 그동안 그렇게 고생만 하다가 이제야 행복을 맛볼 때가 되었는데 애타게 기다리던 손주 얼굴도 못 보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사고 당일 신 씨 부부는 충남 부여 인근으로 나들이를 다녀오던 길이었다. 부부는 시간이 날 때마다 K5 승용차를 타고 나들이를 즐겼다. 5년 전 구입한 이 승용차는 신 씨 가족의 첫 차인데 이번에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아들의 출퇴근용을 겸해 사용하다가 아들 결혼 후 신 씨가 썼다. 신 씨는 평소 장거리 운전을 하면 50∼60km 구간마다 꼭 휴게소에 들러 휴식을 취할 정도로 안전운전을 중시했다고 한다.
이날 오후 8시 반쯤 부부의 빈소에 가해자인 광역버스 운전사 김모 씨(51)가 소속된 오산교통 간부와 노조원들이 찾아 조문했다. 또 신 씨의 아들 등 유족들에게 “드릴 말씀이 없다.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신 씨의 조카는 “버스회사 대표 등 임직원들이 먼저 와서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하는데 오후 2시에 버스공제조합 사람들이 먼저 찾아와서 돈 얘기만 하고 갔다. 사람을 한순간에 고아로 만들어놓고 뭐하는 짓이냐”며 울분을 토했다.
유족들은 이번 사고와 같은 참사가 다시는 반복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신 씨의 조카는 “1년 전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에서 졸음운전으로 4명이 숨졌는데 똑같은 사고가 또 발생했다”며 “누구나 이 같은 사고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는 만큼 보다 강력한 법적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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