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새는 낡은 집… 어김없이 나타난다, 서산 ‘장마철 산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1일 03시 00분


최제용씨, 12년간 200채 무상 수리
가난한 시절 겪으며 기술 익혀… “우리 집 고치듯” 어머니 말 못잊어
“이웃에 살만한 집 기쁨 주고싶어”

폭우가 쏟아진 10일 최제용 씨가 각종 연장과 공구를 챙겨 비가 새 물바다가 된 지적장애인 부부의 집을 찾았다. 서산시 장애인복지관 제공
폭우가 쏟아진 10일 최제용 씨가 각종 연장과 공구를 챙겨 비가 새 물바다가 된 지적장애인 부부의 집을 찾았다. 서산시 장애인복지관 제공

10일 오전 충남 서산시 해미읍의 농촌마을. 지적장애가 있는 할아버지의 품에 안긴 여섯 살 손자는 지붕 위를 쳐다봤다. 빗물 방지용 방수천막을 밧줄로 고정하느라 안간힘을 쓰는 남성이 있었다. 폭우 때마다 망가지는 주변 집들을 고쳐주는 서산시 ‘레인맨’ 최제용 씨(56)다. 할아버지가 손에 커피믹스를 탄 종이컵을 들어 보이자 최 씨는 “아이고, 제가 얼른 마치고 내려가서 마실게요. 그 귀한 걸…”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와 손자 단둘이 사는 집 지붕은 전날 밤새 내린 폭우를 견디지 못했다. 일흔다섯의 할아버지는 새는 천장을 고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빗물에 합선을 일으킬까 봐 불도 켜지 않았다. 3시간 만에 지붕에서 내려온 최 씨는 “빗물 고인 방바닥에서 노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는데…, 이제 걱정 마라”라고 말했다.

최 씨의 집수리 봉사는 올해로 12년째다. 그의 손길이 닿은 집만 서산시에서 200채가 넘는다. 틈틈이 주변의 낡고 고장 난 집을 고쳐온 그의 선행은 2010년 9월 태풍 곤파스로 서산시가 큰 피해를 보면서 본격 시작됐다. “집을 고쳐 달라”며 시 장애인복지관 앞에 장애인과 홀몸노인들이 줄을 섰다. 우연히 이 광경을 본 최 씨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들아, 우리 집을 고쳤듯 이번에도 네가 좀 해다오.”

최 씨는 40년 전 비가 새는 낡은 집에서 생활했던 가족이 떠올랐다. 바로 전기톱, 비닐장판, 사다리, 공구함 등을 트럭에 싣고 길을 나섰다. 첫 번째로 찾은 집에는 농아인 부부가 반쯤 날아간 지붕을 보며 넋을 잃고 서 있었다. 지붕 조각이 하수구를 막아 오물이 역류하는 중이었다. 수리에만 꼬박 하룻밤이 걸렸다. 산업용수 공급설비 제조회사에 다니는 최 씨는 퇴근 후 또 다른 피해 가구를 찾아 나서기를 며칠 동안 반복했다. 최 씨는 “아내 생일도 챙기지 못하고 수해 이웃들만 보러 다녔다”며 “그래도 아내는 군말 한 번 없었다”며 웃었다.

최 씨의 유년 시절은 가난했다. 중학교 졸업까지 최 씨 4남매는 뒷산에서 뜯은 풀로 죽을 쒀서 먹어야 할 때도 있었다. 집은 초가집이어서 가는 비에도 허약했다. 강풍에 날아간 지붕을 다시 덮다 아버지는 수시로 다쳤다. 농업고등학교에 다니며 각종 기술을 익힌 최 씨는 아버지 대신 지붕 위로 올라 집을 고쳐 나갔다. 졸업할 무렵 비로소 ‘살 만한’ 집이 됐단다.

최 씨는 “집다운 집이 됐을 때 행복해하던 어머니 표정을 잊지 못한다”며 “가난하단 이유로 망가진 집을 그대로 두고 사는 이웃에게도 그 기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여든여섯 노모는 여전히 그가 고친 집에서 산다.

빗물 고인 집을 두루 살펴야 하는 탓에 그의 발은 젖어 있을 때가 많다. 이날 오후 수리한 집에서 노인은 새 양말 한 켤레를 조용히 그에게 건넸다. 서울 사는 아들 내외가 찾아오면 신으려 했다고 한다. 최 씨는 “어르신께서 가장 아끼는 걸 내게 줬다. 집은 우리 모두에게 그런 존재다”라고 말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무상 수리#장마철 산타#레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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