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에는 빗소리만 들려도 가슴을 졸입니다. 반구대 암각화가 언제 또 물속에 잠겨 버릴지….”
울산시청 문화재담당 사무관 A 씨(55)는 반구대 암각화를 ‘반구대의 눈물’로 표현하며 이같이 말했다. 선사시대 바위그림인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는 침수와 노출이 반복돼 훼손이 심해지고 있다.
A 씨의 불면의 밤은 다음 주에도 이어질 것 같다. 울산시가 제출한 암각화 보존방안인 생태제방(堤防)안을 20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가 심사하기 때문이다. 생태제방안은 암각화 앞 63m 지점에 길이 357m, 높이 15m, 너비 6m의 제방을 쌓아 침수를 막자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주변 생태환경을 훼손한다며 이미 두 차례나 부결했다. 이날 심의도 녹록지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화재청은 오로지 암각화 하류 사연댐 수위를 낮추자는 방안만 제시한다. 사연댐은 암각화 발견 6년 전인 1965년 축조된 댐으로 해발 62m까지 수위를 높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암각화 높이인 해발 52m보다 수위를 낮춰야 한다고 문화재청은 주장한다.
울산시는 “상황을 제대로 모르고 하는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사연댐 수위는 2014년 8월 문화재청과 울산시, 한국수자원공사의 합의로 해발 52m 이하로 낮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암각화는 2014년 8월 19일부터 10월 19일까지 62일, 2016년 9월과 10월 집중호우와 태풍 ‘차바’의 영향으로 32일간 각각 물에 잠겼다. 집중호우와 태풍이 없던 2015년에는 침수되지 않았다. 사연댐 수위를 낮춘 이후에도 연평균 31일은 침수된 셈이다.
집중호우 때 물 흐름이 빨라져 상류에서 떠내려 온 돌과 나무가 암각화를 더 훼손시킬 우려도 제기됐다. 울산 시민의 물 부족 문제도 간과할 수 없어 수위 조절안은 근본적 해법이 아니라는 게 울산시의 주장이다.
생태제방안은 암각화 맞은편의 퇴적언덕 일부를 깎아 물길을 바꾸는 것이어서 환경훼손도 크지 않다고 시는 말한다. 집중호우가 와도 생태제방이 강물을 막아줘 침수되지 않는다. 또 지금은 100m가량 떨어진 언덕에서 망원경으로 겨우 암각화를 관람하지만 생태제방이 생기면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어 관광 효과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2013년 6월 국무조정실의 중재로 암각화 앞에 가변형 임시물막이(카이네틱댐) 설치에 합의하고 검증을 했다. 하지만 곳곳에 물이 새 지난해 7월 카이네틱댐 설치는 중단됐다.
논란의 틈바구니에서 언제 원형을 잃을지 모르는 반구대 암각화는 방치돼 있다. 이제 반구대의 눈물을 닦아줄 때다. 20일 문화재위원회가 그 역할을 해주기를 울산시민은 물론 문화계 전체가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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