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0시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앞에 600명이 넘는 여성이 몰려들었다. 피부색과 나이, 출신 국가까지 각양각색이었다. 길바닥에 앉아 떡볶이를 먹는 이집트 여성부터 한국어 단어집을 들고 쪼그려 앉아 ‘열공’하는 네덜란드 여성, 미니 선풍기를 들고 앞머리를 말고 있는 홍콩 여성까지…. 이들은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동해(본명 이동해·31)의 팬. 이날은 서울경찰청에서 의경으로 복무 중인 동해의 전역일이었다. 좋아하는 스타의 전역을 축하하기 위해 각국의 ‘글로벌 곰신’이 모인 것이다. 곰신은 군대 간 연인을 기다리는 여성을 일컫는 ‘고무신’의 줄임말이다.
이날 행렬 맨 앞에 있던 스코틀랜드 출신 바이린 씨(21·여)는 13일 오전 5시에 1등으로 도착해 스무 시간 넘게 기다리던 중이었다. 바이린 씨는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빼앗길까봐 컵라면과 콜라 한 캔으로 버티고 있다. 그래도 오빠를 제일 앞에서 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하늘색 히잡을 두른 인도네시아 여성 사산티 씨(27·여)는 맨발로 양반다리를 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선 슈퍼주니어 노래가 흘러 나왔다. 교사인 그는 한국에 오기 위해 월급의 절반인 100달러를 2년간 모았다고 했다. 이날 모인 팬의 대부분은 12일 강원 원주시 1군사령부도 찾았다. 슈퍼주니어의 또 다른 멤버 은혁(본명 이혁재)의 전역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당시 현장에선 은혁을 가까이 보기 위해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그래서인지 서울경찰청 앞에서는 자체적으로 대기명부를 작성해 기다렸다. 언어가 달라 마찰이 생기면 통역을 수소문하거나 스마트폰 번역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했다. 일부 팬들이 차도로 밀려나면 네덜란드에서 온 한 여성이 어눌한 한국말로 “차도 내려오지 마! 차에 치여 죽을 거야. 죽으면 안 돼!”라고 외쳤다.
오전 6시 한 프랑스 여성이 “동해 나오기 3시간 전”이라고 또박또박 외쳤다. 지친 팬들이 일제히 일어나 손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지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오전 9시 반 동해가 정문으로 걸어 나오자 팬들은 “이동해”를 외치며 눈물을 흘렸다. 1박 2일을 기다린 팬들에게 동해는 전역 소감을 밝혔다.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멕시코 여성 산체스 씨(29)에게 “힘든데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감격의 눈물을 닦으며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말했다. “저도 몰라요. Just happiness(그냥 행복하니까)!”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김동혁 기자 h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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