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팬은 압니다. 볼카운트에 따라서 스트라이크존 크기가 달라진다는 걸 말이죠. 타자에게 제일 유리한 3볼 노(0)스트라이크 상황에서는 스트라이크존이 가장 넓고, 거꾸로 투수에게 가장 유리한 0볼 2스트라이크 때는 스트라이크 존이 가장 좁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부작위 편향(omission bias)’이라는 용어로 설명합니다. 부작위 편향을 한마디로 설명하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심리 상태를 말합니다. 부작위(不作爲)라는 낱말은 법률적으로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일부러 하지 아니함(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책임이 따르는 행동을 피할 수 있으니까요.
원래 방금 투수가 던진 공이 볼인지 스트라이크인지 판정하는 건 구심(球審)에게 제일 중요한 임무. 그런데 3볼에서 볼을 선언하면 타자는 볼넷을 얻어 1루 베이스로 걸어가게 되고, 2스트라이크에서 스트라이크를 선언하면 타자는 삼진 아웃을 당합니다. 반대로 3볼에서 스트라이크를 선언하거나, 2스트라이크에서 볼을 선언하면 그냥 볼카운트만 바뀔 뿐입니다. 스크라이크존이 넓어지거나 좁아지는 이유죠.
부작위 편향과 비슷하지만 방향이 다른 개념으로 손실 회피 편향(loss aversion bias)이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손해를 피하려는 경향이 손실 회피 편향입니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83)는 사람들이 똑같은 금액을 얻을 때 느끼는 만족감보다 잃어버렸을 때 느끼는 상실감이 2배 더 크다는 걸 실험으로 증명했습니다.
일기예보 때도 이 손실 회피 편향이 작동합니다. 미국 오하이오주에 사는 에릭 플로에르(46)라는 컴퓨터 과학자는 2002년 연구를 통해 방송사 등에서 강수확률을 20%라고 발표했을 때 실제로 비가 온 경우는 5%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실제보다 강수확률을 부풀려서 발표한 겁니다. 이렇게 예상 강수확률은 실제보다 계속 높다가 70% 이상이 되어서야 실제와 비슷한 확률이 됩니다. 플로에르는 이런 현상에 ‘축축한 편향(wet bias)’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일기예보 때 이렇게 강수확률을 높게 발표하는 이유는 그게 ‘욕을 덜 먹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우산이 없는데 비가 올 때가 우산을 들고 나왔는데 비가 오지 않을 때보다 더 당혹스러운 게 당연한 일. 우산이 없는 데 비가 올 때 ‘오늘 일기예보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더 많을 겁니다. 각종 산업 현장에서도 비에 대비를 해뒀는데 비가 오지 않는 편이 준비 없이 비가 내릴 때보다 손해가 적겠죠? 이런 이유로 일기예보를 발표할 때는 틀릴 줄 알면서도 강수확률을 높게 잡는다는 게 플로에르가 내린 결론입니다.
한국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기상청에서 내놓은 2012~2015년 장마기간 예보정확도를 따져 보면 비가 온다고 했는데 비가 오지 않아서 예보가 틀린 비율은 7.9%로 그 반대 경우 7.0%보다 12.3% 높았습니다. 또 한 전직 예보관은 “장마철에 비가 100㎜ 올 확률이 높다면 예측 강수량은 이보다 조금 높여서 예보하는 일이 많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500억 원짜리 슈퍼컴퓨터를 쓰고도 기상청이 항상 틀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강수 예보가 14.9%(=7.0%+7.9%)가 틀렸다는 건 85.1%(=100%-14.9%)는 맞았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날씨를 예측하는 이들도 틀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어떻게 틀려야 사람들에게 피해를 덜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 틀렸다”고 비난하기 전에 한번쯤 그 고민을 알아줘도 나쁜 일은 아니지 않을까요?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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