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탈출!인구절벽/2부 출산의 법칙을 바꾸자]
‘좋은 부모’ 스트레스에 시달려… 심리상담 받는 경우는 2.6%뿐
일-가정 양립 도울 시스템 필요
회사원 성모 씨(36)는 지난해 11월 ‘용기 있게’ 육아휴직을 내면서 기대에 부풀었다. 한 살배기 아들의 양육을 전담해온 아내에게 늘 “고생한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애 보는 게 회사 일보다 힘들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잦은 야근과 회식으로 상한 몸을 회복할 기회라고도 여겼다. 하지만 성 씨는 복직한 아내를 대신해 아이를 맡은 지 두 달 만에 우울증에 빠졌다. 하루 종일 아이와 붙어 있으면서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 들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고 보채는 아이에게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크게 화를 낸 뒤 스스로를 자책했다.
최근 성 씨처럼 육아휴직 혹은 퇴직 후 아이를 돌보는 ‘전업아빠’가 늘면서 양육 우울증을 호소하는 남성이 적지 않다. 산후 우울증은 출산 후 4∼6주 사이에 산모가 급격한 여성 호르몬의 변화를 겪으며 발생하는 경우가 흔하지만, 양육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는 뜻이다.
양육 스트레스는 ‘좋은 부모’가 돼야 한다는 강박에서 오는 경우가 흔하다. 워킹맘, 워킹대디는 ‘일과 양육 중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전업주부는 아이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하루 일과를 바치면서 삶에 낙이 없다는 괴로움에 빠지는 식이다. 특히 우울감이 들어도 ‘우울한 부모는 좋은 부모가 아니다’라고 생각해 자신의 상태를 애써 외면하고 다른 일에 몰두하다가 증상을 키우는 일이 많다.
여기에 정신질환에 낙인을 찍는 사회 분위기가 더해져 실제 진료를 받는 비율은 더 떨어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3년 1월부터 지난해 7월 사이에 출산한 여성 1776명을 조사한 결과 산후 우울증과 관련해 의사나 심리상담가를 찾아간 경험이 있는 사람은 46명(2.6%)에 불과했다. 산모의 산후 우울증 유병률(해당 질환에 걸릴 확률)이 10%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환자 4명 중 1명 정도만 치료를 받는 셈이다.
양육 책임자가 하루 중 잠시라도 아이와 분리돼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배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파트타임 근로자의 산후 우울증 유병률은 풀타임 근로자나 전업주부의 절반 수준이다. 육아 심리서 ‘균형육아’의 저자인 정우열 생각과느낌클리닉 원장은 “영유아를 둔 부모의 일·가정 양립을 도울 수 있는 대체인력뱅크를 제대로 만들고, 산모의 정신건강을 필수 검사 항목에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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