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늦은 오후 서울 은평구 서부경찰서 근처의 한 아이스크림 가게. 조금 전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나온 10대 두 명의 표정이 마치 방금 게임을 마친 듯 장난기 가득했다.
“이 형이 그저께 길거리에서 딸키(맞지 않는 열쇠로 시동 거는 행위)하다가 오토바이 따가지고 토꼈어요.(훔쳐서 도망쳤어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박주형 군(가명·14)이 서현중 군(가명·15)을 가리키며 말했다. 160cm 남짓 마른 체형을 가진 두 소년의 얼굴은 앳되고 하얬다.
“완전 범죄였는데 잡힌 거죠. 한 명은 (소년원) 가고 한 명은 (보호관찰) 연장되겠죠.”(박 군)
두 소년의 범죄 경력을 합치면 74건이다. 서 군은 2015년 11월 이후 50건, 박 군은 지난해 10월 이후 24건의 범죄를 저질렀다고 했다. 경찰에 붙잡힌 게 그 정도다. 운이 좋아 안 걸린 적도 많다.
둘도 없이 친하다는 두 소년의 첫 만남은 2년 전 녹번역 어느 거리였다.
“첫날 이 형이 자전거를 타고 있었는데 다음 날 자전거가 바뀌어있는 거예요. 뭐냐고 물었더니 하나 따왔대요. 그러더니 그 뒤로 계속 자전거를 따오더라고요.”(박 군)
서 군은 13살 때 처음 소년범죄자가 됐다. 서울 은평구의 한 마트에서 담배 18갑을 훔친 게 시작이었다. 그날 서 군은 야간건조물침입절도죄를 저지른 전과자가 됐고 1년간 보호관찰이 시작됐다. 국가는 소년의 ‘건전한 사회복귀’를 돕겠다며 보호관찰명령을 내렸지만 소년에게 범죄는 일상이 돼버렸다. 서 군은 운전면허가 없었지만 시도 때도 없이 오토바이 훔쳐 탔고 길 가다 걷기 힘들 땐 장애인 전동 휠체어를 훔쳤다. 특수절도, 특수폭행, 상해 등 소년은 갖가지 범죄를 저질렀다.
“얘(박 군)가 친구 좀 혼내달라고 해서 때려줬는데 상해 나온 적도 있어요.”(서 군) 박 군 역시 처음엔 ‘오토바이 절도’로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서 군과 함께 오토바이를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 붙잡힌 게 초범이었다. 이후 박 군이 저지른 범죄는 총 24건. 한 달에 두 건 꼴이다.
“장물 폭행 금품갈취 특수절도 특수폭행…. 아, 감금폭행도 있었다. 집에 친구 가둬놓고 죽도록 팼거든요. 그래도 전 오토바이 훔쳐서 타진 않아요. 빌려서 타요!”(박 군)
소년은 쾌활한 목소리로 전리품 늘어놓듯 자신이 저질렀던 죄명을 말해줬다. ‘무면허 운전’은 소년에게 잘못이 아니었다. 수십 건의 범죄를 저질렀지만 소년들이 받는 ‘교정’은 한 달에 두어 번 서부보호관찰소를 찾는 게 전부다. 서 군은 일주일에 한 번, 박 군은 한 달에 두 번 방문한다.
“한 달 동안 뭐했는지 물어보고 대답하면 ‘알았다’ 그러고 별말 안 해요. 다음에 연락할 테니 그때 오라고 하고 끝내요.”(박 군) 다른 교육을 하긴 했다. “2층에 강당 같은 교실이 있는데 거기 애들 한 20명 모아두고 다큐멘터리나 영화 틀어줘요. 얼마 전엔 ‘범죄소년’ 봤어요. 오토바이 따고 재판 받고 그러는 게 저희 얘기더라고요.”(서 군)
소년들의 보호관찰 ‘쌤’은 자주 바뀌었다. 두 소년이 거쳐 간 선생님은 각각 3명. 서 군은 21개월, 박 군은 10개월 만이었다. 5년째 소년범죄자를 관리하는 한 경찰은 “아이들은 어른을 잘 믿지 않기 때문에 한 사람이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관리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지만 소년들은 오히려 선생님이 자주 바뀌어 좋다고 했다. “오래된 쌤들이 말 안 듣는다고 혼내면 기분 나쁘잖아요. 그러다가 착한 쌤으로 바뀌면 뭐라고 하지도 않거든요.”(서 군) 잘못을 저질러도 아무 말 않아야 소년들에게는 ‘착한 쌤’이었다.
다음 달 서 군은 소년원에 간다고 했다. 이틀 전 저지른 절도 건으로 10호 보호처분을 받아 약 1년간 대전소년원에 머물게 된 것.
“이 형 거기(소년원) 다녀오면 1년 있다가 내년 8월에 나오거든요. 먹여주고 재워주고 보호관찰까지 없어지니 더 좋죠.”(박 군)
기자와의 대화가 끝날 때쯤 경찰 조사에 동행했던 박 군 어머니가 나타났다. 등엔 갓난아이, 오른손엔 어린 여자 아이의 손을 잡은 채였다. 박 군이 “여자친구 만나러 가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일찍 들어오라”는 흔한 잔소리 없이 돌아섰다.
두 소년은 가게를 나와 불광역으로 향했다. 경찰서에서 90분간 시달렸을 테지만 으레 겪었던 일이라는 듯 소년들은 위축된 법이 없었다. 서로의 어깨를 맞잡은 두 소년의 한껏 들뜬 발걸음은 왠지 모르게 위태롭게만 느껴졌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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