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32개 지하철역 이름 병기
서울시 수익사업 일환 돈 받고 병기… 시민들 “공공-편의성 취지 안 맞아”
“대장·항문 전문병원이 사당역을 대표할 수 있나요?”(허모 씨·33)
“대장암 검사 받으러 오는 노인이 많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장모 씨·61)
1일 지하철 2·4호선 ‘사당역’이 ‘사당(대항병원)역’으로 바뀌었다. 서울지하철 경영 개선을 위해 지역 사업자들에게 이용료를 받고 이름을 같이 써 주게 된 것이다. 시민 반응은 엇갈렸다. 역 근처 직장을 다니는 허 씨는 “항문질환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지만 역 이름으로 명시하니 다소 민망하다”고 말했다. 반면 인근에서 시계방을 30년 넘게 운영하는 장 씨는 “역명(驛名)뿐 아니라 지역 안내도에도 표기하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달부터 역명이 ‘사당(대항병원)역’처럼 두 개가 되는 서울시내 지하철역은 18개다. 기존 역 이름에 괄호를 치고 이용료를 낸 사업자가 원하는 이름을 같이 써 준다. 서울시는 지난해 9개 역에 이어 올해 23개 역의 이름을 더 판매했다. 지하철 1∼8호선의 18개 역은 1일부터, 9호선 신논현(르메르디앙 호텔)역과 경전철 우이신설선 4개 역은 다음 달부터 병기(倂記)한다. 입찰을 통해 결정된 32개 역의 이름값은 총 64억6550만 원이다. 역당 대략 2억 원꼴이다. 계약 기간은 3년이고 한 번 연장할 수 있다.
서울시는 병기 역명을 입찰할 때 역과 가깝고 인지도가 있어야 하며, 승객이 이용하기에 편리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지역의 랜드마크 같은 성격이어서 이름을 표기했을 때 사람들이 역 주변을 잘 이해할 수 있고, 쉽게 발음할 수 있으면 더 좋다는 얘기다.
그러나 일부 역명은 이 같은 공공성이나 편의성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강서구 5호선 마곡(홈앤쇼핑)역에 대해 주민 서모 씨(30)는 “쇼핑몰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케이블 홈쇼핑채널 본사 건물을 사람들이 익숙하게 생각하겠느냐”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 인근에 사는 대학생 문현순 씨(24)는 “같이 쓰인 ‘르메르디앙’이라는 이름은 발음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지역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시는 올해 58개 역을 입찰 대상으로 내놨지만 35곳은 팔리지 않았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 객원연구위원은 “공공서비스에는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반영돼야 한다”며 “수익성도 중요하지만 승객에게 혼란을 주지 않는 이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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