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농부 5년만에 ‘귀농 멘토’로 결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5일 03시 00분


[벤처농부 100만 시대 열자]<9> 강원 홍천서 ‘인생 이모작’ 62세 황윤규 씨

귀농 5년 만에 어엿한 농부로 자리 잡은 황윤규 씨가 강원 홍천군 서석면 농원에서 오미자나무에 맺힌 열매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나무가 모두 말라죽는 시련을 이겨낸 황 씨는 첫 수확을 눈앞에 두고 있다. 홍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귀농 5년 만에 어엿한 농부로 자리 잡은 황윤규 씨가 강원 홍천군 서석면 농원에서 오미자나무에 맺힌 열매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나무가 모두 말라죽는 시련을 이겨낸 황 씨는 첫 수확을 눈앞에 두고 있다. 홍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즉 외환외기가 불어닥친 1997년 교통안전공단에 다니던 황윤규 씨(62)는 ‘이때다’ 싶었다. 공단에 언제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지 모르는 지금이 평소 꿈꾸던 농촌 살이를 실현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내에게 뜻을 넌지시 비쳤더니 아이들 교육 때문에 안 된다는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귀농(歸農)이라는 말이 유행하지도 않았던 20년 전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15년이 흐른 2012년 황 씨는 27년을 재직한 공단에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아이들을 다 키운 마당에 아내가 그의 뜻을 꺾을 명분은 별로 없었다. 황 씨 부부는 그해 1월 강원 홍천군 서석면으로 터전을 옮겨 ‘가람농원’을 열었다. 그전부터 주말에 함께 들른 아미산의 주변 풍경이 마음에 꼭 들었다. 서울과 그리 멀지 않은 점도 고려했다.

○ 오미자로 1억 원 매출 ‘성공 예감’

황 씨는 영락없는 농부가 다 됐다. 얼굴과 팔이 건강하게 그을린 그가 1t 트럭을 몰고 비좁은 농로를 능숙하게 달린다. 폭염 속에서도 오미자밭에서 일하는 그의 표정은 밝았다. 주렁주렁 익어가는 오미자를 올가을 수확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귀농 5년 만의 ‘첫’ 수확이다.

오미자 예상 생산량은 15t. 오미자 생과(生果) 1kg에 1만 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산술적으로 1억5000만 원의 매출이 예상된다. 오미자 농사는 나무를 심을 때 투자비가 많이 들지만 정상궤도에 올라서면 크게 돈 들어갈 일이 없다. 생산과 판매가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황 씨의 귀농은 합격점을 받는 셈이다.

지금까지의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전북 익산의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수십 년 도시에서 살아온 그에게 농사가 만만할 리 없었다. 나름의 자신이 있었지만 ‘실전’은 판이했다.

○ 1만 m²에 심은 오미자 손쓸 새도 없이 말라 죽어

황 씨는 귀농 첫해 홍천군농업기술센터에서 교육을 받으며 땅을 일궜다. 육묘에서 수확까지 시기별 관리 요령을 체계적으로 배웠다. 센터에서 연결해 준 선도(先導)농가를 멘토 삼아 현장 실습도 착실히 거쳤다.

자신감이 충만해진 2013년 약 1만 m² 밭에는 오미자를, 1500m²에는 명이나물을 심었다.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의 5가지 맛이 난다는 오미자는 보통 묘목을 심고 3년 뒤면 열매를 딸 수 있다.

그러나 시련이 일찍 닥쳤다. 심은 지 1년 뒤 오미자나무 대부분이 고사했다. 멘토들이 칭찬할 정도로 잘 자라던 나무들은 불과 열흘 사이에 손쓸 새도 없이 죽어버렸다. 1억 원을 순식간에 날린 셈이었다.

농사를 포기할까 고민할 정도로 좌절했다. 아내 볼 낯도 없었다. 용기를 북돋워 준 아버지 덕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는 고사 원인부터 꼼꼼히 살폈다. 지나친 욕심에 검증되지 않은 유기물 비료를 사용한 탓이었다.

1년가량을 준비해 2015년 다시 심었다. 며칠 동안 밤을 새우며 정성을 다했다. 과로로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이런 열정 덕분인지 나무들은 잘 자랐다. 열매를 맺었고 수확을 앞두고 있다.

“정성껏 키운 2년 차 오미자나무가 하루아침에 죽었을 때는 정말 앞이 캄캄했습니다. 하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시행착오를 일찍 경험한 게 다행이라고 여겼습니다.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을 자신감을 얻은 게 최고의 수확이었지요.”

○ 멘토가 되어 후배 농부들 지도

5년 전 멘티(mentee·멘토에게서 조언을 받는 사람)였던 황 씨는 이제 어엿한 멘토로서 후배 귀농인을 지도한다. 홍천군 오미자연구회 사무국장을 맡아 고품질 재배법과 가공법도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오미자주스를 만들어냈다. 120mL 비닐팩 오미자주스 6000개를 ‘완판’했다. 6000개는 예약이 완료됐다.

황 씨는 귀농에 만족하고 있다. 최선을 다하는 하루하루의 성취는 보람이었다. 불가능해 보였던 각종 행정 절차와 농기계 관리, 영농교육 등을 마쳤을 때는 만족도가 배가 됐다. 특히 주민들과의 관계를 다지는 데 힘썼다. ‘금방 떠나겠지’ 하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주민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토박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이제는 명실상부한 서석면 주민이 됐다.

귀농 초기부터 황 씨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종운 홍천군농업기술센터 교육경영담당은 “다른 귀농자들과 달리 의욕이 넘치고 영농교육에도 열심이어서 잘 정착할 줄 알았다”며 “예상대로 농사를 잘 지어서 첫 결실을 본다고 하니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황 씨는 예비 귀농인들에게 꼭 전해 달라며 다음의 말을 남겼다. “세상만사 어려움 없이 되는 일이 있나요.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반드시 신념과 열정으로 무장하십시오.”


홍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초보농부#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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