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변호사 못 구해 석달간 고통… “나같은 피해자 더는 없도록…”
합의금 1000만원 여성단체 기부
20대 여성 J 씨는 지난해 5월 평소 다니던 성당의 50대 신부(神父) A 씨에게서 성추행을 당했다.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 와 홀로 생활비를 벌며 공부와 취업 준비를 병행하던 J 씨가 믿고 의지하던 성직자였다. A 씨는 함께 저녁식사를 한 뒤 귀가하는 J 씨에게 “커피 한잔 달라”며 J 씨의 집에 따라 들어갔다.
A 씨는 커피를 몇 모금 마신 뒤 돌변했다. J 씨를 껴안고 몸을 더듬었다. J 씨의 완강한 거부에 A 씨는 돌아갔지만 이후에도 J 씨에게 계속 연락을 했다. 참다못한 J 씨는 석 달 뒤 사과를 요구하려고 한 식당에서 A 씨를 만났다. A 씨는 식당 계산대 앞에서 강제로 J 씨에게 입을 맞추려 했다. J 씨가 도망치듯 집으로 가자 A 씨는 집까지 쫓아가 “나와 보라”며 소리를 질렀다.
결국 J 씨는 지난해 12월 A 씨가 소속된 교구에 성추행 피해를 알렸다. 하지만 교구 관계자는 “세상의 보복은 건강한 방법이 아니다”라며 경찰 신고를 만류했다. J 씨는 성폭력 피해 지원 단체인 ‘한국 여성의 전화’를 찾았다. 경찰에 신고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지원 단체의 무료 법률 지원 예산이 바닥나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었다. 예산이 충당될 때까지 석 달을 기다렸다. 그동안 J 씨는 고통과 직면해야 했다. 자신을 농락한 신부, 그를 감싼 성직자들, 그들을 믿었던 자신에게 울화가 치밀었다. 수면장애에 우울증을 앓았다.
다행히 경찰 조사는 순조로웠다. A 씨는 성추행을 시인했다.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5월 A 씨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A 씨는 J 씨에게 합의를 요청했다. J 씨는 “신부복을 벗지 않으면 합의할 수 없다”고 했지만 A 씨는 “한 번 실수로 신부직을 내놓을 순 없다”며 버텼다. 그 대신 합의금 1000만 원을 제시했다.
4일 기자와 만난 J 씨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돈으로 해결하려는 태도가 혐오스러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J 씨의 변호사는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A 씨가 초범인 데다 성추행 정도가 비교적 가볍고, 실수를 했다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성직자의 지위가 고려돼 재판에 넘겨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J 씨는 고민에 빠졌다. A 씨가 금전 손실 없이 형사책임마저 피해 간다면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없을 것 같았다.
J 씨는 고심 끝에 합의금 1000만 원을 받아 자신이 도움을 받은 지원 단체에 전액 기부하기로 했다. 변호사 선임을 못 해 석 달간 괴로워하며 기다려야 했던 아픔을 다른 피해자들은 겪지 않기를 바랐다.
J 씨가 합의해준 덕에 A 씨는 1일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그는 지방 수도원으로 전출됐다. J 씨는 “씁쓸하지만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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