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 초대 국무령 이상룡 선생 생가… 일제 “독립운동가 가문 정기 말살”
마당 한가운데 철길 내고 건물 훼손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상징”… 문재인 대통령, 경축사 언급으로 화제
국토부 “철로 2020년까지 옮길 것”
경북 안동시에 위치한 보물 182호 임청각. 일제가 임청각 마당을 가르며 중앙선 철도를 부설하면서 선로와 고택 사이의 거리는 불과 7m밖에 되지 않아 건물 내부에서도 기차 소리가 들린다. 사진 출처 임청각 홈페이지
“하루 종일 전화가 걸려와 난리였습니다. 대통령께서 직접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삶을 언급해 줘서 고마울 따름이죠.”
경북 안동시 임청각에 거주하는 석주 이상룡(石洲 李相龍·1858∼1932) 선생의 증손 이항증 씨(78)는 1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임청각(臨淸閣·보물 182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선생의 생가다.
이날 임청각은 각종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등 화제를 모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임청각은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임청각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지난해 이곳을 방문한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이곳에 4시간 동안 머물며 이상룡 선생 후손들에게 독립유공자 가족의 어려움과 고택에 서려 있는 역사적 사실을 생생하게 전해 들었다. 이곳에서 식사도 했다. 이 씨는 “대통령께 임청각 복원 문제와 소유권 정리에 관한 어려움 등을 전달했다”라며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후손들의 삶을 대통령께서 가슴 깊이 새긴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문 대통령의 권유로 휴가 중인 10일 이곳을 찾아 후손들과 복원 문제 등을 논의했다.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한 누리꾼은 “그동안 몰랐던 사실이 부끄럽다”며 “이번 계기로 꼭 임청각에 가야겠다”고 밝혔다. 다른 누리꾼은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임청각의 원래 모습이 반드시 복원됐으면 좋겠다”는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정부는 즉각적인 조치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임청각 바로 옆을 지나는 중앙선 선로를 옮기는 공사를 2020년 말까지 마칠 방침이라고 이날 밝혔다. 현재 임청각 담벼락과 중앙선 선로 사이의 거리는 7m에 불과하다. 국토부는 2010년부터 임청각 앞 구간을 포함한 중앙선 도담∼영천 145km 구간에 대한 복선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사업이 끝나면 선로의 위치가 바뀌어 임청각과 철길 사이 거리가 6km 정도로 멀어진다.
석주 선생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이듬해 1911년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만주로 떠나면서 400년간 대대로 물려받은 99칸에 달하던 임청각을 처분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썼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는 ‘독립운동가의 정기를 말살시키겠다’며 임청각 마당 한가운데 중앙선 철길을 내고 행랑채와 부속 건물 등을 뜯어냈다. 그 결과 오늘날 철길과 고택이 붙어있는 어색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임청각은 한국관광공사가 인증한 우수한옥체험 숙박시설로 지정돼 있어 숙박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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