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중 같이 먹은 음식, 만난 장소, 동행을 일일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이가 있었다. 대단할 것도 숨길 것도 없는 일상이지만 같이 있으면 ‘트루먼 쇼’를 찍는 기분이었다. 넌지시 자제를 부탁하니 “뭐가 문제냐”는 반응만 돌아왔다. 자연스레 만남이 줄었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한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되고 저장되는 ‘라이프 로깅’ 시대가 도래했다. 누가 언제 어떤 웹사이트를 방문했고, 어떤 이와 친교를 맺었으며, 어디서 어떻게 돈을 썼는지를 알아내는 게 어렵지 않다.
이런 디지털 정보는 지우거나 폐기하기 어려울뿐더러 그 편집 권한이 개개인에게 있지도 않다. 또 나 하나만 차단한다 해서 이를 완전히 통제할 수도 없다. 이 점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소가 최근 성희롱과 왕따의 온상이 된 단톡방이다.
단톡방에서 익명을 무기 삼아 타인을 괴롭힌 사람들을 두둔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대화 내용을 비밀로 하기로 약속했기에 퍼질 것이라고는 추호도 인식하지 못했다”는 반응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업무와 친교를 위해 단톡방을 이용하는 우리 모두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어서다. 화가 났을 때 지인과의 단톡방에서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떠돌아다니면 어떨까. 모골이 송연해지는 사람은 기자만이 아닐 것이다.
노르웨이 사회학자 토마스 마티센(84)은 이를 ‘시놉티콘(synopticon)’이라 명명했다. 그리스어로 ‘함께 본다’는 말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정보기술(IT) 발전으로 기존 소수의 감시자와 다수의 피감시자 간 경계가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의 정보를 파악하고 퍼뜨릴 수 있고, 감시하고 감시당할 수 있음을 일컫는다.
미국 국가안보국(NSA) 같은 거대 정부기관, 구글 페이스북 같은 대형 정보기술 업체의 개인정보 수집과 분석이 ‘빅브러더’ 형태라면 매일 얼굴을 맞대고 일하는 동료나 자주 만나는 지인들이 내가 별 뜻 없이 한 말을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은 시놉티콘의 대표적 부작용이다. 정서적 친밀도를 감안하면 후자의 충격은 전자와 비교할 수도 없다.
단톡방 비밀 대화가 여러 문제를 낳자 일부 대학생과 직장인들은 단톡방을 다시 만들거나 기존 글을 삭제했다는 인증 사진을 찍어 공유한다고 한다. 미국 컴퓨터 보안전문가 브루스 슈나이어(54)도 정보 유출을 우려하는 현대인에게 “소셜미디어에서 자신과 전혀 무관한 사람을 검색하라. 가끔 스마트폰을 두고 다녀라. 신용카드 대신 현금을 사용하라”는 대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임시방편이 얼마나 갈까. 싫든 좋든 해답은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엄격한 자기관리인 듯싶다. 한 인간의 행적이 샅샅이 까발려지는 시대일수록 부적절한 말과 글, 편파적 태도, 민감한 영상이 내 목을 죄어 오는 부메랑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해동소학에 ‘독처무자기(獨處毋自欺)’란 말이 나온다. ‘홀로 있는 곳에서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뜻이다. 쉬운 일은 아니나 어쩌겠는가. 정보기술은 더 무섭게 발전하고 인간의 네트워크는 더 촘촘해질 것이다. 빅브러더 때보다 광범위하고 내밀한 감시가 주변인에 의해 이뤄지는 시대를 살아가는 유일한 처세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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