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5일 울산 A중학교 1학년 이모 군(13)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곁에는 ‘아버지보다 먼저 떠나는 예의 없는 아들’이라는 유서가 있었다. 이 군의 아버지(50)는 아들의 학교폭력 피해를 주장했으나 학교 측은 부인했다. 한 달 후 옷장 속 이 군의 상의 주머니에서 쪽지가 발견됐다. 학생 2명이 폭행했다는 내용이다.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얼마 뒤 믿기 힘든 사실이 드러났다. 이 군 아버지가 유서를 조작한 것이다. ‘유서 조작’으로 수사 전망도 불투명해졌다. 하지만 상황은 다시 한 번 반전됐다. 경찰의 수사 끝에 학교폭력이 사실로 드러났다. 학교 측이 사건을 은폐하고 고위 관계자가 수사 무마를 시도한 정황도 포착됐다.
○ 경찰, “가해 학생 8명 확인해 송치”
울산지방경찰청은 숨진 이 군의 같은 학교 동급생 8명을 조만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라고 30일 밝혔다. 이 군을 지속적으로 괴롭힌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다.
경찰 조사 결과 이 군은 입학 직후인 3월부터 동급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다른 지역에서 온 이 군이 지역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는 것. 가해 학생들은 뒤통수를 때리고 의자에 앉지 못하게 하며 이 군을 못살게 굴었다. 이 군은 4월 28일 학교 3층 복도에서 뛰어내리려 했다. 다행히 지나던 학생들이 막았다. 이날 이 군은 인근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찾아온 상담사 2명에게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털어놓았다.
센터는 이 군 사례를 학교 측에 알렸다. 5월 16일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가 열렸다. 학폭위는 학교폭력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 3명에게 아무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그 대신 이 군에 대해 ‘병원 진료 및 학업중단 숙려제 실시’를 결정했다. 경찰은 학교 측이 이 군의 초등학생 시절 상담기록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학폭위에 제공하면서 이런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군의 극단적 선택 후 학교 안팎에서는 “이 군에게 분노충동조절장애가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경찰은 이 과정에 학교 측의 개입과 고의적인 은폐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억울함을 견디지 못한 이 군의 아버지는 울산시에 재심을 요청했지만 기각됐다. 그러자 지난달 19일 큰아들을 시켜 ‘학교가 싫다. 무섭다. 애들이 나를 괴롭힌다’는 내용의 유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며 학교폭력도 거짓이라는 의심을 받게 됐다. 아버지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학교가 내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 하지 않아 순간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했다”며 “죄책감 때문에 결국 조작 사실을 스스로 밝혔다”고 주장했다.
○ 교장, “덮고 끝내 달라” 수사 무마 시도
지난달 24일 경찰청 지시로 정식 수사가 시작됐다. 경북지방경찰청에서 파견된 조모 경사(40)가 맡았다. 본보가 입수한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B 교장은 조 경사에게 전화를 걸어 “경사님 선에서 덮고 끝내 주면 고맙겠다”며 “한두 사람 다치더라도 몇 사람만 좀 살려 달라”고 말했다.
다음 날 B 교장은 조 경사를 만나 “이거면 되겠느냐”며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고 한다. 또 무릎을 꿇고 “제발 살려 달라”고 말했다. 조 경사가 “뭐하는 거냐”고 외치자 B 교장은 황급히 손을 내렸다. 조 경사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당시 교장의 행동과 말은 뇌물을 주겠다는 뜻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B 교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경상도 남자끼리 사건을 잘 해결하자는 뜻에서 엄지를 세워 보인 것이며 돈을 준 적이 없다”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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