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 모신 아내위한 보은여행
아르바이트 면접 합격한 16세 아들
“엄마가 전화를 받지않아요” 눈물
버스 안전대책 내놔도 잇단 사고
아르바이트 면접에 합격한 아들은 곧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 엄마는 “공부하라”며 아들의 아르바이트를 말렸다. 하지만 아들은 어려운 가정형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기쁨이 앞섰다. 그러나 엄마는 아들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번이고 걸었지만 신호음만 들렸다. 아들은 오랜만에 나들이 간 부모가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후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2명이 숨졌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때까지도 아들은 사고의 피해자가 자신의 부모인 줄 몰랐다.
3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한 병원 장례식장. 검은 상복 차림의 이모 군(16)은 부모의 영정 앞에서 고개를 떨궜다. 옆에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여동생(12)이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남매의 부모 이모 씨(48)와 엄모 씨(39·여)는 하루 전 천안논산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고속버스 추돌사고로 숨졌다. 사고는 2일 오후 3시 55분경 충남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천안논산고속도로 하행선(순천기점 265.6km)에서 일어났다. 서울을 떠나 전남 고흥으로 가던 고속버스가 앞서 서행하던 싼타페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차량 8대가 연쇄 충돌하면서 싼타페 승용차에 타고 있던 이 씨 부부가 숨지고 고속버스 운전사 신모 씨(59) 등 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찰은 고속버스 및 피해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과 진술을 토대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사고 영상에서 고속버스가 사고 순간 속도를 줄이지 않았고 신 씨가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 점으로 미뤄 순간 졸음운전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불과 두 달 전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에서 발생한 광역급행버스 추돌사고 원인도 졸음운전이었다.
숨진 이 씨 부부는 2000년 결혼했다. 이 씨는 건설현장에서 전기설비담당 근로자로, 엄 씨는 7년째 피자가게 직원으로 일했다. 이 씨는 올 3월 아버지를 여의었다. 엄 씨는 수년간 지병을 앓던 시아버지를 정성스럽게 보살폈다. 이 씨는 고생한 아내에게 둘만의 나들이를 약속했다. 이날 낮까지 일한 뒤 아들과 딸에게 “날이 좋아 여수에 바다 보러 다녀올게”라고 말한 뒤 집을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이 씨의 여동생(37)은 “아버지를 모셨던 빈소에서 오빠 부부를 보낼 줄 누가 알았겠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교통빅데이터연구소장은 “좋은 장치를 도입해도 운전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사고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디지털운행기록계(DTG) 제출 의무화와 이 장치를 운행관리에 활용하는 업체에 대한 인센티브 등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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