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 City]1990년대 드라마 단골… ‘한강의 기적’ 이끈 거점공항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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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영화 ‘택시운전사’ 속 김포공항

① 1969년 7월 김포공항 활주로에 대한항공 여객기가 서 있다. ② 1980년 8월 국제선 1청사가 개관했다. ③ 일부 국제선이 개항된 현재의 김포국제공항. 한국공항공사 제공
1969년 7월 김포공항 활주로에 대한항공 여객기가 서 있다. 1980년 8월 국제선 1청사가 개관했다. 일부 국제선이 개항된 현재의 김포국제공항. 한국공항공사 제공
1980년 5월 일본 특파원이던 독일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치만)는 도쿄(東京) 프레스센터에서 동료로부터 ‘광주’ 이야기를 듣는다. 그길로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내린 피터는 택시를 타고 광주로 향한다.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은 통금 전까지 광주를 다녀오면 거금을 준다는 말에 기분 좋게 나선다.

9일 현재 관객 1200만 명을 넘어선 영화 ‘택시운전사’는 광주시민이나 학생운동가의 시선이 아닌 두 개의 외부 시선으로 5·18민주화운동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광주의 실상을 현실적으로 그리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래서 더 전달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에서 만섭은 피터와 그가 찍은 사진들을 다시 김포공항에 무사히 데려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여기서 김포공항은 단지 해외로 떠나는 장소만이 아니다.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도록 한국 땅을 밟고 넘어서야만 하는 ‘문’이다. 동시에 안과 밖이 자유롭게 오갈 수 없는 통제의 ‘문’이기도 하다. 피터가 처음 입국할 때 공항 세관에서 엄격하게 검사받는 장면이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다.

작가 홍세화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서 “(1979년 3월) 이륙한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등불은 별처럼 명멸하였다간 아스라이 사라졌다. 착잡했다. 해방감과 허전함이 교차했다”고 말하기도 한 김포공항. 그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은 1939년 김포군 양서면 방화리(서울 강서구 과해동)에 활주로 건설을 시작했다. 이는 1942년 김포비행장으로 이어졌다. 패색이 짙어가던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가미카제(神風) ‘자살 특공대’의 훈련장으로 사용했다.

광복을 맞았지만 1950년 6·25전쟁이 터진 뒤에는 미국 공군의 군용비행장으로 활용됐다. 사실상 민간 위주로 김포공항이 쓰인 건 1958년 1월 대통령령 1319호에 따라 김포국제공항으로 지정된 뒤다. 경제가 발전하고 교역량이 커지면서 항공화물이 늘었던 1971년부터 규모가 점점 커졌다.

하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물류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에게 김포공항은 여전히 오르지 못할 나무였다. 비행기를 오르내리는 사람은 지금 같지 않았다. ‘특권층만 공항을 이용한다’는 인식이 작지 않았다.

해외여행 자유화 시책이 내려지고 대학생들이 배낭여행을 떠나기 시작한 1990년이 돼서야 김포공항은 사랑을 확인하는 하나의 장치로 대중문화에 나타났다. 멀리 헤어지는 연인이 마지막으로 만나는 곳이 김포공항이었다. 원화 강세를 배경으로 유학생과 어학연수가 늘면서 이른바 트렌디 드라마에서는 유학파 주인공들이 많아졌다.

2001년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하면서 김포공항은 다시 국내선만 운항하게 됐다. 그러나 2002년 한일 월드컵과 이후 한류 바람을 타고 일본과 중국의 관광객이 폭증하면서 국제선 일부 항로가 다시 개설됐다.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무척이나 역동적인 한국 현대사에 맞춰 모습을 조금씩 바꿔 왔기 때문일까, 1980년 당시 김포공항의 모습을 재현하기에는 지금의 김포공항이 너무 현대적이었을까. ‘택시운전사’에서는 실제 김포공항을 배경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영화에 나오는 김포공항 검색대는 전남 광양항 국제여객선터미널에서, 보안대원들이 피터를 가로막는 김포공항 보안관리과는 대전월드컵경기장 사무실에서 찍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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