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 패션은 우리가 원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2일 03시 00분


제2 부흥 꿈꾸는 청파-서계동 봉제거리
5분거리 남대문시장 전성기땐 새벽에 가져온 디자인 아이디어, 오후 샘플 만들고 밤에 제품 판매
의상학과 학생들에 봉제기술 전수… 고가 기계 市 지원받아 공동 이용

35년 경력의 락어패럴 이상태 대표가 주머니를 만드는 웰팅기와 인터로크 기계를 작동해 보이고 있다. 소상공인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서울시가 지원해 구입했다. 이 기계들은 중고가도 대당 1700만 원이어서 영세업체가 개별 구매하기는 어렵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35년 경력의 락어패럴 이상태 대표가 주머니를 만드는 웰팅기와 인터로크 기계를 작동해 보이고 있다. 소상공인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서울시가 지원해 구입했다. 이 기계들은 중고가도 대당 1700만 원이어서 영세업체가 개별 구매하기는 어렵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서울역 뒤 용산구 청파동과 서계동은 큰길가에서 보면 조용한 동네다. 하지만 골목길로 들어서는 순간, 오케스트라처럼 다양한 소리들이 열린 창문 틈으로 새어나온다. 뜨거운 다리미 스팀 소리, 가위로 패턴 뜨는 소리, 미싱의 규칙적인 박자에 맞춰 옷감이 빠르게 움직인다. 봉제업체 2500여 개가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6일 오후 만난 해성패션 김덕순 대표(56)는 “원단이 중국에서 들어오는데 사드 영향으로 대량 수입할 수 없어 어려움은 있다”면서도 “그래도 한국의 봉제기술은 중국이 따라올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 봉제업은 이제 끝난 것 아니냐’는 세간의 평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자신감이었다. 35년 넘게 여성복을 제작한 김 대표는 “색감과 디자인에서 우리나라 옷 제조업은 강점이 많다”고 말했다.

최근 자라, 유니클로 같은 외국 업체가 패스트패션(빠르게 제작하고 바로 유통시키는 트렌드)을 내세우지만 이곳, 청파동 서계동 봉제공장 거리야말로 원조 패스트패션 클러스터였다. 남대문시장에서 차로 5분 거리인 이 거리의 공장들은 새벽에 디자이너가 아이디어를 가져오면 오후에 샘플을 제작하고 밤중에 남대문시장에서 팔았다. ‘반응이 오는’ 제품은 더 만들고 소비자의 의견에 따라 제품이 달라지기도 했다.

남대문시장 옷가게가 성황이던 1990∼2000년대 함께 전성기를 보낸 봉제공장 거리는 기술을 배우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젊은이가 떠난 자리를 중국동포가 채우면서 겨우 유지는 됐지만 몇 년 전부터 비자 기준이 엄격해져 그마저도 어려워졌다. 이 거리의 ‘막내’는 40대 중반이다. 이상태 락어패럴 대표는 “30∼40년 쌓인 기술을 청년 디자이너에게 전할 필요와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곳 봉제장인들이 지난해부터 대학 의상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6개월간 교육 및 실습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시가 지원한다.

서울신용보증재단도 자영업 협업모델 사업 차원에서 외국에서만 생산되는 고가의 기계들을 구입하는 데 힘을 보탰다. 봉제공장 거리의 사단법인 한국봉제패션협회 공동사무실에 주머니 웰팅기와 원단 끝부분에 실밥이 날아다니지 않도록 마무리하는 인터로크 기계를 들여놓았다. 매일 평균 8개 업체가 찾다가 최근에는 18개 업체가 공동사무실을 찾아 기계를 사용한다. 이런 식으로 업체당 한 달에 최소 20만 원씩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됐다. 당초 옷감 패턴을 뜨는 캐드(CAD) 기계 구입을 지원받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캐드작업 전문 업체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함께 쓸 수 있는 기계로 정했다.

인근에 서울로 7017이 개장하면서 봉제공장 거리는 제2의 부흥을 꿈꾸고 있다. 이 대표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봉제품을 볼 수 있는 쇼룸과 청년 디자이너들이 패턴을 디자인할 수 있는 공동작업실이 마련된다면 더욱 활기를 되찾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패스트 패션#봉제거리#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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