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화재 진압중 매몰 2명 순직… 이런 소방관을 잃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8일 03시 00분


정년퇴직 1년 앞두고 현장출동 앞장서던 베테랑
국민 지키는 몸 만든다고 술-담배 안하던 새내기

“늘 ‘걱정 마세요’라고 말하던 우리 아들이 왜 여기 있죠….”

아버지가 아들을 바라보며 허망하게 말했다. 자신보다 아버지 걱정만 하던 아들은 소방관 정복을 입은 채 영정 속에 있었다. 아들의 눈빛은 여전히 걱정하지 말라는 듯 아버지를 향했다. 17일 강원 강릉의료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경포119안전센터 이호현 소방사(27)의 아버지 이광수 씨(55)는 “전날도 근무 나가며 ‘식사 챙겨 드시고 걱정 마시라’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소방사는 이날 오전 4시 29분경 강릉시 경포 석란정(石蘭亭) 화재 현장에서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려 숨졌다. 이 소방사의 ‘멘토’였던 이영욱 소방위(59)도 함께 희생됐다. 30년 경력의 베테랑인 이 소방위는 내년 말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었다.

해병대 전역 후 이 소방사는 강원도립대 소방환경방재과에 편입하며 뒤늦게 소방관을 준비했다. 이 씨는 “우리 호현이가 노량진 쪽방에서 독하게 소방관 시험을 준비했는데…. 그토록 바라던 소방관을 1년도 못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소방사의 고모는 영정 앞에 술잔을 놓으며 “국민을 지켜야 한다고 술 한 방울 입에 안 대던 조카가 죽어서야 술맛을 본다”며 울먹였다. 동료들은 “이 소방사가 항상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며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했다.

6남 2녀 중 일곱째인 이 소방위는 치매 증상이 있는 노모(91)를 열심히 보살폈다. 그는 “퇴직하면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매일 뵙는 게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주변에서 “말년인데 몸 생각하라”고 말해도 그는 사이렌이 울리면 가장 먼저 장비를 챙겼다. 동료들은 “최고참인데도 이날 새벽 호출을 받고 가장 먼저 달려갔다. 불 앞에서 늘 앞장서던 선배였다”고 말했다.

강릉=최지선 aurinko@donga.com / 황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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