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강릉 할머니 피살사건 초기, 경찰은 40대 이웃 용의자로 봤지만
검사, 허술한 수사 밝혀내고 풀어줘
“검사님. 드디어 진범이 잡혔습니다.”
13일 창원지검 형사2부장 김완규 검사(47·사법연수원 29기)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김 검사가 춘천지검 강릉지청에 근무할 때 만난 경찰관 A 씨였다. A 씨는 “늘 마음속 짐으로 남아있던 사건이 해결됐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드리고 싶었다. 당시에 현명한 판단을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12년 전 기억이 차츰 되살아났다. 2005년 5월 13일 강원 강릉시 구정면에서 B 씨(사망 당시 70세·여)가 숨진 채 발견됐다. 얼굴과 입은 포장용 테이프로 칭칭 감겨 있었고 손발도 전화선으로 묶인 채였다. 장롱 서랍은 모두 열려 있고 귀금속 80만 원어치도 사라졌다. 일명 ‘강릉 노파 피살 사건’이었다.
경찰은 금품을 노린 강도가 저지른 살인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수사 착수 한 달이 넘도록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애가 탄 경찰은 숨진 B 씨의 친인척과 마을 주민 수십 명을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B 씨에게 200만 원을 빚진 마을 주민 C 씨(당시 45세·여)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경찰은 C 씨에게서 자백을 받아냈다며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당시 수사팀 소속이던 A 씨는 구속영장을 신청한 뒤에도 마음이 끝내 불편했다. C 씨가 범인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이 가시지 않아서였다. A 씨는 동료들 몰래 김 검사에게 “영장을 청구하기 전에 C 씨 이야기를 꼭 한번 들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김 검사가 수사 기록을 들여다보니 허술한 부분이 많았다. 경찰은 “C 씨가 청소 도구 손잡이로 쓰는 길이 1m가량의 알루미늄 막대로 B 씨를 때려 숨지게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증거로 제출된 막대는 비닐 커버를 벗기지 않은 새 것이었고 표면에는 흠집 하나 없었다. 두께가 얇은 알루미늄 막대로 때렸다고 보기에는 B 씨 얼굴에 난 상처가 너무 면적이 큰 점도 의심스러웠다. C 씨에게는 남편과 시아주버니가 “사건 당시 함께 집에 있었다”고 진술한 알리바이도 있었다.
김 검사는 C 씨를 불러 “당신이 범인이 맞느냐”고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C 씨는 “경찰과 마을 사람들이 의심하고 추궁해서 허위 자백을 했다”고 실토했다. C 씨는 “지나가던 비구니가 ‘자백을 안 하면 어린 자녀가 위험해진다’고 해서 겁이 났다”고 말했다. 김 검사는 C 씨의 구속영장을 반려했다. 경찰은 거짓말탐지기를 동원해 C 씨에 대해 보강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C 씨가 범인이라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12년 만에 진범이 잡힌 건 B 씨 얼굴에 감겨 있던 포장용 테이프에 남은 1cm짜리 ‘쪽지문’(완전하지 않은 부분 지문) 덕이었다. 경찰은 최신 지문 감식 기술로 문제의 쪽지문이 마을 주민 D 씨(49)의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D 씨는 강도 범행 전과도 있고 범행 당일 알리바이도 거짓이었다. 김 검사는 본보와 통화에서 “지금이라도 진범이 잡힌 게 기쁠 뿐이다. 그걸로 됐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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