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9월 19일 ‘지존파’ 일당이 검거됐다. 추석 연휴 뒤인 9월 22일자 동아일보 1면을 비롯해 5개면에 걸쳐 이들의 범행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다. “납치, 감금, 성폭행살인, 시체유기, 살인교사… 모든 범죄가 다 망라돼 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9월 22일자 30면)
지존파는 1993년 대부분 가정환경이 불우해 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공사판을 전전하던 20대 청년들이었다. 도박판에서 만난 이들은 ‘가진 자’에 대한 증오감을 표출하면서 범죄단체를 결성했다. ‘조직을 배반한 자는 죽인다’, ‘돈 많은 자로부터 목표액 10억 원을 빼앗는다’는 등의 행동강령도 만들었다. 원래 이들은 ‘마스칸’(그리스어로 ‘야망’이라는 뜻)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러나 경찰은 이들이 야망을 위해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에 수사 단계에서 ‘지존파’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지존파의 타깃은 부유층이었다. 이들은 실제로 서울의 한 백화점 고객 명단을 입수하기도 했다. 검거되기까지 지존파 일당에게 희생된 사람들은 충남 논산의 20대 여성, 지존파를 이탈한 10대 청년, 서울 강남의 카페에서 밴드를 하던 남성,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부부 등으로 이들이 증오했던 ‘부유층’은 아니었다.
지존파가 충격을 준 것은 인면수심의 살인행각 때문이었다. 첫 희생자는 이들이 ‘살인연습을 한다’며 범행을 저지른 대상이었다. 일당들은 주택 지하실에 창살감옥과 사체 소각로를 만들었다. 이어 사람들을 납치해 가둔 뒤 시신을 훼손하는 등 무자비한 범죄행위를 이어갔다.
이들의 범행은 납치된 여성이 일당 중 다친 조직원과 함께 병원에 갔다가 극적으로 탈출하면서 알려졌다. 이들은 검거된 뒤 “압구정동 야타족들을 다 죽이지 못해 한이다”라고 말했고 조사 내내 살인극을 태연하게 재연하는 모습을 연출해 국민을 소름 끼치게 했다.
무더위가 엄습했던 1994년에는 강력 범죄가 유달리 많았다. 재산을 노리고 부모를 살해한 박한상 사건, 여성들을 택시로 납치해 성폭행하고 살해한 온보현 사건 등이 발생했다. 특히 지존파는 엽기적인 범행 수법으로 큰 충격을 줬다.
지존파는 재판 결과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을 기소한 서울지검 형사3부가 펴낸 ‘백서’는 수사 검사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정녕 세상에 신과 악마가 존재한다면 본 사건이야말로 악마의 대리자들에 의하여 저질러진 범죄라고 규정하고 싶다.”(동아일보 1994년 12월 15일자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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