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청이나 구로구보건소 로비에 가면 민원서류발권기 비슷한 기기가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성인 키만 한 높이에 보이는 터치스크린 방식의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짚어 나가면 얼마 뒤 서류가 배출구에서 나온다. 각종 등·초본이 아니라 ‘마음진단서’다. 당신의 정신건강은 어떤 상태인지를 묻는 31개 단답형 질문에 답을 하면 3분이 채 안 돼 손에 쥘 수 있다. 우울증, 스트레스, 자살경향성 등을 평가한 정신건강 종합 진단 결과다. 이 기기는 ‘희망터치 무인검진기’다. ‘가장 우울한 기초단체’라는 오명을 받고 있던 구로구는 2014년 당시 이 기기 3대를 도입해 배치했다. 이동이 가능한 나머지 한 대는 관내 감정노동을 주로 하는 업체들을 순회한다. 희망터치 무인검진기 운영 시스템은 보건복지부 제1회 정신건강의 날(10월 10일) 우수사례로 선정됐다. ○ ‘우울한 지자체’ 오명 벗다
2010년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구로구는 자살률 2위였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가 30.1명나 됐다. 자살률을 낮추려고 여러 방안을 도입해 2013년 21위, 2014년 18위까지 순위가 내려갔다. 2014년 7월 희망터치 무인검진기를 도입한 뒤 구로구는 더 이상 우울하지 않다. 2015년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7.3명으로 24위였다. 자살률이 가장 낮은 전통 부촌 서초구를 바짝 뒤쫓고 있다. 깜짝 놀란 서초구에서 올해 초 찾아와 ‘비법’을 묻기도 했다. 지난해 자치구별 자살률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무인검진기의 장점은 짧은 시간에 자신의 마음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는 것만이 아니다. 진단 내용은 즉시 구로구 정신건강복지센터로 전달된다. 전문가들은 정상 주의 위험 등 진단 결과에 따라 맞춤형 관리에 나선다. 주의 단계는 전문상담사의 상담 및 ‘힐링 케어’ 문자 서비스를 받는다. 위험 단계는 기본 4회(4개월간) 추가 대면상담과 심층평가, 치유프로그램, 의료비 등을 지원한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최근 30년 넘게 조현병 증세로 괴로워하던 60대 A 씨를 발견해 치료할 수 있었다. 지독한 이명(耳鳴)으로 괴로워하며 “나도 죽고 남도 죽이겠다”고 되뇌던 A 씨는 심리적 안정을 되찾았다.
○ 의료 사각지대 발굴에 초점
2012년 ‘구로구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며 본격적인 대책 마련에 나선 구로구는 사각지대 발굴에 전력을 기울였다. 가계가 취약한 홀몸노인과 홀몸장년층, 고시원 등을 전전하는 주거취약계층을 찾기 위해 야쿠르트 아줌마, 도시가스 검침원, 자원봉사자 등의 도움을 받았다.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자살경향성이 높은 이들을 찾아내 선제 대응을 한 것이다. ‘말벗 봉사’ 등도 운영하며 이들 취약계층과 계속 연락했다.
음지에 있던 사람을 양지로 끌어내면서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받는 사람도 늘었다. 2014년 4.1%였던 구민 스트레스 상담 비율은 5.8%로, 우울증 상담 비율은 9.9%에서 17.9%로 늘었다. 김민욱 정신건강복지센터 실장은 “몇 차례 찾아가도 면담을 거부하면 문자메시지나 전화로 계속 접촉을 시도한다”며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과도 협력한다. 우울증이나 자살 시도 신고가 들어오면 경찰은 즉시 정신건강복지센터로 연락해 상담사와 함께 출동한다. 구로구 측은 “민관이 협력해 주민 모두의 행복지수가 높아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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