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수액’ 사건에는 징조가 있었다. 해당 제조업체들이 최근 3년 내 수차례나 같은 법령을 어겨 정부에 적발된 것으로 20일 확인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당국은 형식적인 조사와 솜방망이 처분으로 일관했다. 중대한 위생·안전 관리 의무를 어긴 의료기기 업체는 곧장 제조 허가를 뺏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7, 18일 이대목동병원과 인하대병원에서 연달아 “수액세트(수액 주머니와 주삿바늘 사이에서 수액 공급 속도를 조절하는 연결관)에서 벌레가 나왔다”는 신고를 각각 접수했다. 인하대병원은 사용 전에 발견했지만 이대목동병원에선 요로감염으로 입원한 생후 5개월 영아가 이 수액세트로 수액을 맞았다.
식약처가 제조업체인 충북 청주시 ‘성원메디칼’과 경북 구미시 ‘신창메디칼’에 조사관을 보내 보니 부실 검사 정황이 줄줄이 드러났다. 의료기기 제조업체는 제품을 병·의원에 보내기 전에 반드시 벌레 등 이물이 없는지, 표기가 정확한지 등을 자체적으로 검사해야 하지만 성원메디칼 등은 검사일지를 텅텅 비워뒀고 제품 견본도 남기지 않았다. 식약처는 성원메디칼에 해당 제품 제조 중지 30일을, 신창메디칼에는 제조 중지 15일을 각각 명령했다.
이 업체들이 부실 검사로 적발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신창메디칼은 지난달 22일 당뇨병 환자용 주사기 중 바늘 끝에 실리콘이 고여 있는 불량품을 걸러내지 못해 제조 중지 30일 처분을 받았다. 당시 식약처 조사관들은 당뇨병 환자용 주사기를 만드는 과정만 살핀 뒤 돌아갔다. 불과 일주일 후,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던 이 업체의 일반용 주사기에서 모기가 발견됐다. 식약처는 2차 현장조사를 벌여 “업체를 고발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수액세트를 만드는 공장은 정부의 2차 조사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주사기를 만드는 공장과 다른 건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식약처는 한 달도 안 돼 불량 수액세트 신고를 받았고, 2차 조사 때 건너뛰었던 바로 옆 공장으로 3차 조사를 나가야 했다. 수액세트 제조 공장에선 부실 검사뿐 아니라 불량품과 적합 제품을 뒤섞어 보관하는 등 여러 법령 위반 행위가 이뤄지고 있었다. 1, 2차 조사에서 해당 업체의 모든 공장을 전반적으로 점검했다면 미리 파악할 수 있는 문제였다는 뜻이다.
성원메디칼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업체는 지난해 7월 필리핀 공장에서 위탁 제조한 수액세트를 제대로 검사하지 않고 병원에 납품해 제조 중지 37일 처분을 받았다. 이대목동병원에 벌레가 든 수액세트를 납품하게 된 과정과 판박이였다.
하지만 식약처는 이 업체를 지난해 적발한 이후 후속 조사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 업체가 2014년 10월에도 카테터(의료용 튜브)를 부실 검사해 제조 중지 15일 처분을 받았던 점을 감안하면, 2년 만에 같은 잘못을 저지른 업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식약처는 다음 달 중 주사기와 수액세트를 만드는 의료기기 제조업체 관계자를 불러 모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량 의료기기가 발견돼 신고나 민원이 접수돼도 해당 제품만 조사하는 현행 방식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심각한 위반 행위가 확인되면 1차 위반만으로도 폐업 혹은 제조허가 취소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법령을 고쳐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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