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m² 땅, 주인은 241명… “아파트 개발 발목잡는 지분 쪼개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고양 식사2구역에 무슨 일이…

2200채 규모의 아파트 신축이 추진되고 있는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2구역 일대. 특정 업체가 ‘지분 쪼개기’ 방식으로 위장 조합원을 늘렸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8년 넘게 건축허가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2200채 규모의 아파트 신축이 추진되고 있는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2구역 일대. 특정 업체가 ‘지분 쪼개기’ 방식으로 위장 조합원을 늘렸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8년 넘게 건축허가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2구역 22만7000m²의 대지에는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2200채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어야 했다. 신안건설산업과 DSD삼호, 원주민 170여 가구 등이 도시개발사업조합을 만든 것은 2009년 5월이었다. 그러나 8년 넘게 건축허가도 받지 못하고 있다. 도시개발계획이 교착상태에 빠진 것은 삼호 측이 개발 예정 터 2필지를 명의신탁 방식으로 지분을 잘게 쪼갰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부터다. 이른바 ‘지분 쪼개기’를 통해 조합원을 늘려 사업조합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주장이었다.

○ “법 개정 전 서둘러 ‘위장’ 조합원 늘려”

당초 신안은 식사2구역 5만7000m²의 터에 아파트를 지으려고 2004년 건축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2006년 삼호가 신안 터와 원주민 부지 그리고 이 구역에 있는 삼호 땅을 모두 합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짓자고 제안하고 신안이 이를 수락하면서 새로운 도시개발사업이 시작됐다. 하지만 28일 찾은 현장은 공터 그대로였다. 주변에 몇 가지 건축자재만 쌓여 있었다.

신안 측은 삼호가 우호 조합원을 많이 확보하려고 회사 직원과 그 가족 등의 이름을 동원해 특정 토지 지분을 나눠 가졌다는 의혹이 해소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아일보가 이날 확인한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식사동 587-14 땅은 넓이가 242m²(약 73평)인데 주인은 129명이었다. 한 명당 1.88m²씩 소유한 셈이다. 이들 129명은 모두 2008년 9월 17일 토지를 매입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168m²(약 51평) 넓이의 식사동 634-6 땅은 112명이 1.5m²씩 나눠 가졌다. 이들도 2006년 10월 30일 한날에 해당 토지를 일괄 구매했다.


식사2구역 개발부지 조합원은 504명이다. 이 중 이 두 필지 410m²에 명의가 있는 조합원은 241명으로 전체 조합원의 48%를 차지한다.

신안 측은 식사동 587-14 땅을 129명이 일괄 구매했고 등기 순위가 이름 가나다순으로 돼 있는 등 삼호 측이 조직적으로 명의신탁 거래를 한 의혹이 짙다고 주장했다. 이 129명 중 51명은 삼호가 개발하는 경기 김포시 풍무지구, 용인시 신봉지구, 고양시 식사1지구 등에서도 땅을 1.5m²씩 보유해 거기서도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식사동 634-6 땅을 사들인 112명 중 11명은 2010년경 삼호의 용인 개발사업에서 발생한 지분 쪼개기에 명의를 빌려준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았다는 게 신안 측 주장이다.

신안 관계자는 “식사동 587-14의 일괄 매매가 이뤄진 날은 공유지분자에 대한 조합원 자격이 대표자 1인에게만 주어지도록 법이 개정되기 사흘 전이었다”며 “법 개정 전 서둘러 ‘위장’ 조합원을 늘려 조합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고 한 것으로 명백한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 법정으로 번진 불법 명의신탁 의혹

신안 측은 토지 감정평가에서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고 주장한다. 개발구역의 신안 측 토지 가격을 A감정평가원은 820억 원이라고 감정했다. 그러나 두 달 뒤 B감정평가원은 692억 원으로 매겼다. 동일한 시점을 기준으로 같은 땅에 대한 감정가가 128억 원 차가 난 것이다. 신안 관계자는 “B감정평가원에는 조합이 이례적으로 선수금 5000만 원을 지급했다”며 “통상 의뢰한 지 한두 달이면 나오는 감정 결과가 1년이 다 돼서 나왔다”고 주장했다.

신안은 올 4월 불법 명의신탁으로 지분 쪼개기를 한 의혹과 감정평가 보고서의 위법성을 수사해 달라며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 삼호를 고소했다. 검찰은 식사동 2필지 지분이 241명에게 나눠지는 과정에 불법이 있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신안은 2009년 조합 설립 인가처분의 효력을 취소해 달라며 고양시를 상대로 지난달 의정부지법에 행정소송도 냈다.

삼호 측은 28일 이 같은 신안 측의 의혹 제기와 소송에 대해 “입장 표명을 하지 않겠다.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고양시 관계자는 “2009년 조합 설립 인가 당시 조합원 70% 이상이 동의했고 적법한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면서 “‘불법 쪼개기’ 의혹은 신안과 삼호 사이의 문제라서 시가 답할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조합 관계자는 “행정소송 결과를 지켜보고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조동주 djc@donga.com·김배중 기자
#고양#식사2구역#아파트#개발#지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