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인천 A중학교 B 군은 동급생들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한 사실을 담임교사에게 털어 놓았다. 가해 학생들은 습관적으로 ‘툭툭’ 때렸을 뿐 아니라 실내화를 빼앗아 변기에 버리고 성기를 만지는 등 성적 가혹행위도 했다. 이를 알게 된 B 군의 2학년 담임교사는 이런 사실을 B 군 학부모에게 알려 정식 수사까지 이뤄졌다.
문제는 B 군이 1학년 담임교사에게도 자신이 괴롭힘을 당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했지만 ‘단순한 장난’으로 치부해 7개월이나 괴롭힘이 이어졌다는 점이다. 학교폭력을 바라보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 사이에 인식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 교사, 학생·학부모에 비해 폭력 심각성 인식 낮아
1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한국교육개발원으로부터 받은 ‘행복교육 모니터링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간 학교폭력이 개선됐다’는 응답은 평균 3.51점이었다(5점 척도). 학교 구성원별로 보면 교원(3.67점), 학부모(3.43점), 학생(3.27점) 순으로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반면 근무 또는 재학 중인 학교의 학교폭력 수준을 두고는 교원(2.38점), 학생(2.39점), 학부모(2.50점) 순이었다. 교사는 학생이나 학부모에 비해 ‘내가 다니는 학교의 학교폭력이 심각하지 않다’고 보는 셈이다.
이는 지난해 10월 한국교육개발원이 교원·학부모·학생 모니터링단(5728명)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예방 근절 대책 추진과 관련해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교원·학부모·학생은 거의 모든 문항의 응답에서 통계상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가장 근절이 시급한 학교폭력의 종류를 두고 학부모와 학생은 학교 내의 언어폭력(각각 38.6%, 41.9%)을 꼽았다. 이는 교사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사안이다. 반면 교원들은 학교 밖에서 일어나는 사이버폭력(38.5%)을 근절이 가장 시급한 학교폭력으로 봤다. 특히 ‘따돌림의 근절이 시급하다’는 응답이 학생들은 30.7%에 이르렀으나, 교원은 학생의 절반 수준인 16.5%만 따돌림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했다.
○ 학교폭력 대책에도 큰 차이 보여
학교폭력의 대책을 묻는 문항에서도 학생과 학부모는 ‘교사의 역할’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학교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로 학부모(43.8%)와 학생(38.6%)은 ‘학교구성원 간 친밀하고 원활한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학생들이 동급생뿐 아니라 선생님과의 소통을 원하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교원(40.2%)은 ‘학교에서의 인성 교육’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정책으로 학생은 학생보호인력 배치나 폐쇄회로(CC)TV 설치 등 ‘학교 안전인프라 확충’(43.3%)을 선택했다.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대책을 원하고 있는 셈이다. 교사와 학부모는 ‘학교폭력 교육 내실화’(각각 38.6%, 51.2%)를 꼽아 학생들의 인식과 차이를 보였다.
학생의 건전한 언어 사용 습관을 위해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로는 교원은 ‘가정에서의 올바른 언어 사용 습관 교육’(60.2%)을 압도적으로 꼽아 ‘가정교육’을 강조했다. 반면 학부모(36.1%)와 학생(31.9%)의 경우 ‘학생자치활동을 통한 올바른 언어 사용 규칙 만들기’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생각했다.
학생들은 학교폭력 신고 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신고처로 학교 선생님(40.2%)보다 117학교폭력 신고·상담전화(43.5%)를 더 많이 선택하기도 했다.
학교폭력을 예방하려면 교육 주체들 간 인식의 간극을 좁히고 학교교육과 가정교육이 선순환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의원은 “학교폭력 문제는 어른들의 입장이 아닌 아이들의 입장에서 대책과 해결책을 마련해야 실효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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