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또 놀이’는 이제 직접 해본 적이 없는 사람도 대부분 어떻게 하는지는 알고 있는 ‘국민 게임’이 됐다. 하지만 1985년만 해도 낯선 놀이였다.
김순덕 동아일보 기자(현 논설주간)는 그해 오늘(10월 18일)자 신문에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늘 관심을 두고 편지나 선물을 보내면서 격려하는 ‘마니또’ 놀이가 최근 여학생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다”며 이 놀이를 소개했다. 1920년 창간한 동아일보에 ‘마니또’라는 세 글자가 등장한 건 이 기사가 처음이었다.
이 기사는 한국 언론 역사상 처음으로 마니또 놀이를 소개한 기사일 개연성이 높다. 한국언론진흥재단 기사통합검색(KINDS) 서비스에서 찾아보면 다른 신문에는 동아일보보다 2년 늦은 1987년이 되어서야 이 낱말이 등장한다. 단, KINDS에서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기사는 찾을 수 없다. 동아일보를 제외한 두 회사 인터넷 홈페이지 검색 결과 업체명을 제외하면 2000년 이후에야 마니또라는 낱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럼 이 마니또는 무슨 뜻일까. 당시 동아일보는 “‘마니또’란 스페인어로 ‘애인’이라는 뜻으로 학생들 사이에는 ‘애인 같이 상대방을 생각하고 아껴주는 친구’를 의미한다”고 풀이했다. 그런데 스페인어로 애인을 뜻하는 낱말이라면 노비오(novio·남자친구), 노비아(novia·여자친구) 등을 먼저 떠올리는 게 보통이다. 한국말로 ‘자기야’처럼 부를 때는 ‘카리뇨(cari¤o)’가 일반적이다.
그렇다고 저 문장이 사실과 다른 건 아니다. 은어, 속어, 인터넷 유행어 등을 풀이하는 서비스 ‘어반 딕셔너리(urbandictionary.com)’에 따르면 마니또(manito)에는 ‘나를 배신하지 않을 친구’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스피킹라티노닷컴(speakinglatino.com)이라는 사이트에서도 니카라과, 도미니카공화국, 멕시코에서 친구를 뜻하는 속어(slang)로 마니또를 쓴다고 소개하고 있다.
누가 어떻게 이렇게 널리 쓰이지 않는 낱말을 알게 돼 한국에 들여왔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세상 아주 없는 말을 지어내지는 않은 셈이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이 기사가 1985년에 나온 덕에 마니또를 마니또로 쓸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듬해(1986년) 국립국어원에서 제정한 외래어 표기법은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만약 이 말이 요즘 등장했다면 ‘마니토’라고 써야 했을 확률이 높다. 이탈리아에서 건너 온 아이스크림을 ‘젤라토’라고 써야 옳은 것처럼 말이다. 이 표기법에는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기 때문에 일단 마니또를 마니또로 써도 무방하다.
그런데 왜 하필 스페인어였을까. 순전히 추측하건대 어쩌면 스페인어를 쓰는 볼리비아에서 건너 와 당시 인기를 끌던 가수 임병수 씨 영향도 있지 않았을까. 그저 ‘응답하라 1988’에서 ‘아이스크림 사랑’에 들어 있는 스페인어 가사를 유창하게 따라하던 성덕선(이혜리 분), 류동룡 때문에 생긴 착각일까.
물론 이 기사는 ‘아이스크림 사랑’이란 노래를 들으며 썼다. 이 노래에서도 마니또가 아니라 카리뇨를 부른다. “카리뇨 미오, 소모스 도스, 이 투, 이 요, 엘 파하로 이 라 플로르, 이 투, 이 요, 란사모스 엘 아모르, 이 투, 이 요, 디렉토 알 코라손, 알 코라손, 카리뇨 미오, 소모스 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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