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클릭! 재밌는 역사]유관순과 안네, 두 소녀의 저항과 희생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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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유관순과 안네의 어린 시절 첫번째 사진은 이화학당 시절의 유관순(뒷줄 오른쪽). 두번째 사진은 몬테소리 초등학교 교실에서의 안네.
[그림1] 유관순과 안네의 어린 시절 첫번째 사진은 이화학당 시절의 유관순(뒷줄 오른쪽). 두번째 사진은 몬테소리 초등학교 교실에서의 안네.
[그림1]은 유관순과 안네의 어린 시절 모습입니다. 지금 여러분이나 친구의 모습과 한 번 비교해 보세요. 둘 다 어린아이에서 점점 소녀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가랑잎이 굴러만 가도 절로 웃음이 나고 맑은 하늘을 쳐다보다가 스스로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는 나이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유관순은 1902년 충남 천안에서 유중권 씨와 이소제 여사 사이에서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유중권은 감리교 신자로 학교를 세운 계몽 운동가였습니다. 유관순은 1914년경부터 공주 영명학교를 다녔고, 이후 감리교 선교사의 소개로 1916년 이화학당 보통과에 편입했습니다. 교과 공부, 성경, 체조, 재봉, 수예 등을 배웠고 주말에는 흰 저고리와 회색 어깨허리치마를 입고 정동교회에 갔습니다.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힘들었겠지만, 즐거운 학창 생활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림2] 안네의 일기 원본.
[그림2] 안네의 일기 원본.
안네는 192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습니다. 은행가인 아버지 오토 프랑크와 어머니 메디트 사이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1933년 나치당의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유대인 탄압 정책을 실시하자, 안네의 집안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망명했습니다. 1942년에는 나치가 네덜란드를 점령하고 유대인을 찾아내서 수용소로 끌고 가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안네의 아버지는 네덜란드의 프린센흐라흐트 263번지 건물 창고 안에 은신처를 마련합니다. 그리고 안네의 식구를 포함한 8명의 유대인들은 숨소리를 죽이면서 살았습니다. 안네는 13세 생일날 받은 일기장에 일기를 쓰기 시작합니다.[그림2] 안네는 수용소로 잡혀간 유대인과 비교하면 자신은 ‘천국’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자전거를 타고, 춤을 추고, 휘파람을 불고, 세상을 보고, 청춘을 맛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 유관순과 안네의 가슴 아픈 이야기

그런 두 소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알고 있지요. 두 소녀의 죽음에 앞서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한 가지 더 하려고 합니다. 1917년 유관순(15세)에게는 정말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사촌인 유경석과 노마리아 사이에서 조카 유제경이 태어난 것입니다. 유관순은 태어난 조카 유제경에게 손수 뜨개질한 모자를 선물합니다.[그림2] 유제경은 이 모자를 어른들로부터 받아 85년간 간직해 오다 유관순 탄신 100주년 때 유관순연구소에 기증했습니다.

[그림2] 유관순이 뜨개질한 모자.
[그림2] 유관순이 뜨개질한 모자.
이 모자의 사연을 알고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15세 소녀가 뜨개질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조카가 예쁘고 사랑스러운 마음이 있고, 자신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안네의 가슴 아픈 이야기는 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발견됩니다. 1944년 7월 21일 안네는 자신의 일기장에 “오는 10월에는 학교의 책상 앞에 앉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기뻐 조리 있게 말할 수도 없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1944년 8월 1일 마지막 일기장에는 자신의 외면과 내면에 존재하는 두 가지 서로 반대되는 모습 때문에 부끄러워합니다. 명랑하고 고집도 있고 당돌한 자아와 얌전하고 맑고 진지한 자아가 서로 싸우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안네를 응원하고 싶습니다.

○ 유관순과 안네의 저항이 우리에게 준 선물

유관순의 꿈을 빼앗아간 거대한 시대의 흐름을 우리는 제국주의라고 부르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안네와 같은 유대인을 학살한 시대의 흐름을 전체주의라고 부릅니다.

두 소녀의 행복,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파괴한 제국주의와 전체주의에 두 소녀는 어떻게 저항했습니까. 유관순은 3·1운동 시기 서울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경무 총감부에 붙잡혔다 풀려났습니다.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지자 천안에 내려가 4월 1일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이후 체포되어 1920년 9월 28일 서대문 감옥에서 순국했습니다. 그리고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가 이태원 지역이 개발되면서 무덤이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젊은이와 외국인의 거리지만, 유관순의 무덤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일제강점기 역사책의 순서를 잘 보면, 대부분 3·1운동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 나옵니다. 당시 임시 의정원은 헌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 임시 헌장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유관순과 우리 민족의 저항이 상하이 임시정부와 헌법의 제정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이태원 유관순 추모비(첫번째 사진)와 안네의 묘.
이태원 유관순 추모비(첫번째 사진)와 안네의 묘.
안네의 저항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안네는 1942년 6월 20일 두 번째 일기에서 “종이는 인간보다 참을성이 있다”는 속담을 인용합니다. 그 종이에 일상을 기록했고, 살아 돌아온 아버지가 그 일기장을 발견해 세상에 알립니다. 독일 학자로부터 나치즘에 대한 강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치즘의 출현은 1000년이 지나도 ‘영원한 현대사’이며, 부끄러워하고 가슴 깊이 반성해야 할 역사라고 했습니다. 그러한 반성 속에서 독일이 다시 출발합니다. 그리고 국가의 헌법을 다시 만듭니다. 독일 헌법 1조 1항에는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할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권력의 책무이다’라고 명시했습니다. 안네의 일기는 독일인들에게 더 철저하게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가슴 아픈 역사이지만, 그들의 희생과 저항이 있었기에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친구들에게 오늘 신문 기사를 소개해 주세요. 그리고 서로 두 가지 문제를 두고 이야기해 보세요. 첫째, 오늘날에도 안네와 유관순이 경험했던 것처럼 국가와 사회가 개인의 행복을 지켜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한 사례를 이야기해 봅시다. 둘째,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헌법이 만들어진다면 1조 1항에 어떤 내용을 담고 싶은가요.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해 보세요. 여러분들의 생각과 소망이 모여 새로운 헌법이 만들어집니다.
  
이환병 서울 용산고 교사
#유관순#안네의 일기#두 소녀의 저항과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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