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동아/10월 23일]1996년 백범 암살범 안두희 씨 피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2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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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존경하는 독립 운동가는?’
이렇게 묻는 설문에서 1위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뉴스가 되는 인물이 바로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이다. 그랬으니 백범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 씨(1917~96·사진 왼쪽) 목숨을 노리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게 당연한 일. 1996년 오늘(10월 23일) 버스 기사 박기서 씨(당시 47·사진 오른쪽)가 마침내 그 뜻을 이루고야 말았다.

안두희 씨 피살 소식을 전한 1996년 10월 24일자 동아일보 1면.
안두희 씨 피살 소식을 전한 1996년 10월 24일자 동아일보 1면.

‘거사’를 계획하면서 박 씨가 선택한 무기는 나무 몽둥이(홍두깨)였다. 그는 시장에서 길이가 40㎝ 정도 되는 홍두깨를 사서 매직으로 ‘정의봉’이라고 쓴 다음 안 씨 집에 쳐들어가 그를 때려죽였다. 평소 백범 선생 책을 열심히 읽었다는 박 씨는 경찰에 자수한 뒤 “이 하늘 아래에서 (안 씨와) 같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안 씨가 (백범 선생 암살 배후가 누구였는지) 진실을 밝히지 않아 분개를 느껴 범행했다”고 말했다.

백범 선생 피살 소식을 보도한 동아일보 1949년 6월 27일자.
백범 선생 피살 소식을 보도한 동아일보 1949년 6월 27일자.


현역 군인 신분이던 안 씨가 백범 선생을 저격한 건 1949년 6월 26일. 당시 이승만 정권에서는 안 씨 단독범행이라고 발표했지만 그때부터 배후가 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안 씨는 1992년 4월 13일자 동아일보를 통해 김창룡 당시 특무대장(1920~56)의 사주를 받아 백범 선생을 암살했다고 증언했지만 이후 몇 차례 말을 바꾸면서 신빙성에 물음표가 따라 붙었다.

백범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 씨가 범행 이후 처음으로 범행 이후 입을 열었다고 보도한 동아일보 1992년 4월 13일자.
백범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 씨가 범행 이후 처음으로 범행 이후 입을 열었다고 보도한 동아일보 1992년 4월 13일자.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말 바꾸기에 분개한 박 씨가 안 씨 목숨을 빼앗으면서 정말 백범 선생 암살에 배후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누구였는지는 영영 역사 속에 묻히게 됐다. 물론 이미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안 씨가 끝내 진실을 밝히고 세상을 떠났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사건으로 박 씨는 대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 받았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1998년 3·1절 특사로 수감 1년 5개월 만에 출소했다. 박 씨는 이후에도 친일 성향 평론가 김완섭 씨(54) 구타 사건 등으로 언론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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