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관광객을 불러모으던 아름다운 연꽃이 이제는 철새 서식을 가로막는 애물단지가 됐습니다.”
24일 오후 철새 도래지인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주남저수지 탐조대 앞. 억새꽃이 만발한 저수지 둑을 걸으며 가을 정취를 만끽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임희자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은 “연꽃이 주남저수지를 점령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연꽃으로 가득해 저수지 물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7월 중순부터 8월 초 핀 연꽃은 모두 졌다. 연꽃잎은 일부만 녹색을 띨 뿐 대부분 누렇게 변했다. 잎이 떨어지고 남은 연꽃대는 화살촉처럼 뾰족하게 하늘을 향했다. 그러다 보니 차츰 철새가 서식할 공간이 모자라거나 먹이를 찾기 불편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을까 우려가 크다. 망원경으로 관찰하던 임 실장은 “현재 주남저수지에는 선발대로 날아온 물닭과 쇠오리, 흰죽지를 비롯해 철새 5000마리 정도가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철새는 이달 말부터 12월 초까지 본격적으로 이곳을 찾는다. 무엇보다 주남저수지 단골인 재두루미, 노랑부리저어새 같은 희귀 새의 생활 터전이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당장 연꽃대가 물에 잠기도록 수위를 끌어올리고 싶지만 이해관계가 복잡해 쉽지만은 않다.
주남저수지 연꽃은 10년 전 물가에서 조금씩 보이다 2012년 이후 중앙부로 번졌다. 올해 수위가 낮아지면서 확산이 빨라졌다. 가뭄으로 저수지 물을 농업용수로 많이 끌어가면서 수위가 내려가자 생존 위기를 느낀 연꽃의 번식 본능으로 더 빠르게 퍼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 같은 연꽃 확산은 경남과학기술대 조경학과 이수동 교수 연구에서도 확인됐다. 주남저수지를 구성하는 3개 연결 저수지(주남 산남 동판) 가운데 가장 넓은 주남(2.85km²)의 식생 분포를 보면 연꽃이 2009년 1.4%였지만 2011년 7.4%, 2014년 18%, 2015년 가을 30.6%로 급증해 올해는 무려 60.2%를 점유했다. 산남은 2014년 7.8%에서 2015년 가을 13.6%, 올해는 37.6%였다. 동판은 6.2% 수준이다.
이 교수는 연꽃 뿌리(연근) 제거는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 어려우니 우선 드러난 연꽃을 베어내는 예취(刈取)와 수위 조절을 주문했다. 4∼6월 3차례 예취하고 연꽃이 피기 전 적절히 수위를 관리해 연꽃이 물에 잠기도록 하면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것. 수위 조절은 용수 관리와 저수지 둑 안전 문제를 감안해 창원시가 관리처인 농촌공사와 협의할 필요가 있다.
최종수 한국조류보호협회 창원지회장은 “연꽃이 저수지를 뒤덮으면서 자라풀, 마름, 물옥잠 같은 수질을 정화하는 수생식물이 죽고 있다”며 “부영양화(富榮養化)로 물이 썩고 어류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길게 보면 주남저수지가 육지화될 수도 있다고 한다. 최 지회장은 경기 팔당호에서 성과를 거둔 수초제거선 투입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창원시가 철새 보금자리 보전을 위해 연꽃과의 전쟁을 벌여야 할 처지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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