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 진열대에서 분유를 들었다 놓기를 여러 번, 주머니는 텅 비어 있었지만 굶고 있는 아기를 생각하면 돌아설 수가 없었다. ‘몰래 가방에 넣어 가면 모르지 않을까….’ 스물두 살 대학생이던 남미화 씨(36·여)가 잘못된 선택을 하기 직전, 가게 주인이 말을 건넸다. “연우(첫째 딸 이름) 엄마, 그냥 가져가고 (분윳값은) 다음 달에 줘.” 남 씨는 그날 분유를 아이에게 먹이면서 ‘살림이 피면 꼭 어려운 아이들을 돕겠다’고 다짐했다.
남 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했다. 뇌출혈로 지체장애가 생긴 어머니를 보살펴야 했다. 섬유공장에 취직해 생활비를 벌면서 작가의 꿈을 키워갔다. 뒤늦게 고졸 검정고시를 거쳐 한 대학 국문학과에 입학했지만 이듬해에 아버지까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형편은 더 어려워졌다.
당시 대학원생이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아르바이트로 번 생활비 70만 원은 방세를 내고 교통비를 쓰고 나면 감쪽같이 사라졌다. 지역 유지의 자서전을 대필해주는 일을 하면서 그나마 형편이 차츰 나아졌다. 글 솜씨를 인정받아 퇴임 연설을 다듬어 달라고 요청하는 공직자나 단체장이 생겼다.
하지만 4년 전 또 한 번 고비가 찾아왔다. 우울증을 앓던 둘째 언니가 조카와 함께 숨을 끊었다. 그들의 시신을 발견한 게 남 씨였다. 시도 때도 없이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남편이 “항상 낮은 곳을 보며 살자는 초심을 잊지 말자”고 얘기했다. 남 씨는 그 순간 깨달음을 얻었다. 다른 이의 인생을 글로 옮기다 보면 ‘나도 이렇게 베풀며 살아야지’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는데, 더 미룰 이유가 없었다.
남 씨는 지난해 2월부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통해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160만 원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5년간 총 1억 원을 기부할 예정이다. 세 아이를 키우는 동시에 대필 작업을 하다가도 짬이 나면 복지시설을 찾아가 기타 연주 봉사활동을 한다. 그의 모습을 보고 자란 열 살배기 둘째 아들은 최근 돼지저금통을 인근 복지센터에 가져다줬다. 남 씨가 후원하는 중학교 3학년 여자아이가 어느 날 보내온 100점짜리 성적표를 보고 내 아이의 일처럼 기뻐하는 순간, 그를 괴롭히던 환각이 사라졌다.
“주위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생각하면 후원도 봉사도 전혀 힘들지 않아요.” 남 씨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고액후원자 모임 ‘그린노블클럽’ 참여를 희망하는 후원자는 재단 상담센터(1588-1940, www.childfund.or.kr)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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