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동 잠못드는 밤, 주민들 뿔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3일 03시 00분


불법 간판 철거나선 구청직원들 2일 송파구청 직원들이 법정 규격을 지키지 않은 불법 간판을 철거하고 
있다. 송파구 가락본동에는 최근 3, 4년 사이 24시간 노래연습장과 단란주점이 급격히 늘면서 거주환경이 악화될까 우려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송파구 제공
불법 간판 철거나선 구청직원들 2일 송파구청 직원들이 법정 규격을 지키지 않은 불법 간판을 철거하고 있다. 송파구 가락본동에는 최근 3, 4년 사이 24시간 노래연습장과 단란주점이 급격히 늘면서 거주환경이 악화될까 우려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송파구 제공
서울 송파구 가락본동 A아파트 주민들은 최근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는 거리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쉰다. 겉은 320가구가 사는 아파트지만 실상은 주상복합건물이다. 1, 2층 상가에는 새벽까지 영업하는 술집인 바(bar)가 15개나 있다. 여성 도우미가 나오는 노래연습장도 상당수다. 한 주민은 “노래연습장이나 바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A아파트 주변도 마찬가지다. 사방을 둘러싼 상가들은 노래연습장 ‘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거주지역으로 분류된 B건물은 5개 층이 노래연습장 10곳으로 채워져 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손님을 끌기 위해 간판은 더욱 커지고 화려해진다. 관련 규정에 따르면 간판 글씨는 폭 45cm, 길이 10m를 넘기면 안 된다. 그러나 글씨 크기를 더 크게, 심지어 돌출형으로 만들고 화려한 조명까지 활용하는 업소가 대부분이다. A아파트 주민들은 “밤에 잠을 자야 하는데 간판 빛이 번쩍거려 고통스럽다” “길에서 호객행위가 너무 심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괴롭다”며 송파구청에 계속 민원을 넣었다.


10년 전 이곳에 입주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가락본동은 이 정도로 어지럽고 시끄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3, 4년 전부터 서울 도심 퇴폐 유흥업소에 대한 단속과 주민 항의가 거세지자 업주들은 외곽으로 영업할 곳을 찾았고 이곳도 그중 한 군데가 됐다. 일종의 풍선효과인 셈이다.

인근에 24시간 바쁘게 돌아가는 전국 최대 규모 농수산물도매시장인 가락시장이 있다는 점도 지금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한몫’했다. 가락시장에는 밤새 전국에서 찾아오는 중도매인과 상인을 포함해 하루 평균 5000명이 움직인다. 거래를 기다리며 밥도 먹고 술도 마신다. 유동인구가 많다 보니 유흥업소는 점점 늘었다.

현재 가락본동에만 노래연습장 61곳, 유흥주점 40곳, 단란주점 20곳이 영업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 27곳은 일반음식점 허락을 받았지만 사실상 술집 영업을 한다. 김종화 송파구청 위생관리팀장은 “성매매를 알선하거나 퇴폐영업이 이뤄질 우려가 많아 업소 안에서 문을 잠글 수 없도록 해놓았다”고 말했다. 이 ‘잠금해제’ 조치를 거듭 어기면 영업정지 처분도 내려진다.

주민들은 2일 행동에 나섰다. 주민대표 수십 명과 송파구청 공무원들은 이날 오후 8시부터 9시까지 거리에서 성매매 근절과 유해환경 개선을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무분별한 호객행위를 막고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업주들에게 단합된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에 맞춰 구청은 규정에 맞지 않는 거대 간판들을 업주 동의를 받고 철거했다. 박철구 송파구청 광고물정비팀장은 “과도한 조명과 간판을 스스로 철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11시부터 이튿날 오전 4시까지 구청 직원과 주민의 ‘감시’는 이어졌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가락동#노래방#불야성#주상복합건물#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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