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풍납동 레미콘 공장을 강제 수용하는 결정은 부당하다며 삼표산업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풍납토성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땅의 레미콘 공장을 이전할 필요가 없다는 1심 판결이 뒤집히면서 토성 복원사업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대전고법 제1행정부(허용석 부장판사)는 2일 삼표산업이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낸 ‘사업인정고시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풍납토성 전체 복원사업의 핵심 권역인 수용 대상 부지에 성벽 등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하는 게 합리적이다. 성벽 등의 복원과 정비를 위해서는 공장 부지가 수용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판결했다.
1925년 대홍수 당시 유물이 출토돼 존재가 알려진 풍납토성은 백제의 한성 도읍기(기원전 18년∼기원후 475년) 왕궁으로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1997년 근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백제 초기 토기조각을 비롯한 유물 3만여 점과 건물터, 도로 자취 등이 발굴됐다. 문화재청과 서울시, 송파구는 2003년 본격 복원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서울시는 풍납토성 등 한성백제 유적을 근거로 ‘2000년 역사도시 서울 선포식’을 열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며 주변 토지 수용 의사를 밝혔다.
삼표산업은 풍납토성 서(西)성벽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구에서 1978년부터 레미콘 공장을 운영했다. 송파구는 2013년까지 435억 원을 들여 전체 터(2만1076m²)의 64%(1만3566m²)를 매입했다. 그러나 이듬해 삼표산업이 “남은 터를 매각하기 어렵다. 공장을 이전할 땅을 먼저 확보해 달라”고 번복하면서 복원사업은 표류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변화는 삼표그룹 사돈가인 현대차그룹이 지을 강남구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삼표 풍납공장은 GBC 터까지 1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레미콘 공급에 최적으로 꼽힌다.
그러나 송파구는 이 공장 터를 강제 수용하는 절차를 밟았고 국토부는 이를 승인했다. 삼표산업은 이에 반발해 지난해 3월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올 1월 1심 재판부는 “풍납토성 서성벽이 존재할 가능성이 없다”며 삼표산업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9월부터 송파구와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가 진행한 발굴조사에서 서성벽, 석축과 함께 성문이 있던 터로 추정되는 유구들이 확인되면서 상황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관계자는 “복원작업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삼표산업 측은 이날 “대법원 상고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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