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중심부 옛 마세나역은 다른 곳에 철로가 신설돼 폐(廢)역사가 됐다. 소유주인 파리시가 적절한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해 수년째 방치돼 도심 흉물이 됐다. 하지만 이곳은 2020년대 중반 음식 재료의 재배, 수확에서 소비까지 이뤄지는 도시농업 지원시설로 다시 태어난다. 바로 옆 작은 빈터에는 8층 높이 목조 건물을 지어 역사와 연결해 사용할 예정이다.
파리시가 2014년 11월 시행한 도시재생 사업 ‘레앵방테 파리(R´einventer Paris·파리 재발견)’의 결과물이다. 방치되거나 이용률이 낮은 공유지, 공공시설의 활용 방안을 시민 아이디어에서 찾아보는 프로젝트다. 파리시는 옛 마세나역을 포함해 23곳을 대상으로 시민 공모를 진행했다. 미셸 자우이 파리시장 자문건축가는 “늘 비슷한 결과물을 양산하는 기존 민간투자 방식 대신 시민들 아이디어를 모아 공공성을 높인 혁신적 공간을 만들기 위한 사업”이라고 말했다.
서울에도 비슷한 프로젝트가 등장한다. 6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내년부터 레앵방테 파리 프로젝트를 본뜬 ‘서울형 저이용 도시공간 혁신사업’을 추진한다. 유휴 인프라, 공유지 등 시내 사업대상 후보지 50곳을 골라 이 중 10여 곳을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한다. 이를 위한 타당성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시는 서울형 혁신사업이 기존 도시재생 사업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재정사업 위주인 도시재생 사업은 막대한 예산이 들어 시 부담을 가중시킨다. 민간투자 사업은 대규모 도시 인프라 분야나 상업시설에만 치우쳐 있는 상황이다. 시 관계자는 “이용도가 낮은 시설, 공간에 공공성을 갖춘 중소 규모 민간투자사업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안이 서울형 혁신사업”이라고 말했다.
서울형 혁신사업은 기존 공급자 위주 사업과 달리 구상 자체부터 철저하게 시민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시는 수익성과 공공성, 혁신성을 검토해 아이디어를 선정하고 지원하는 역할만 한다. 틀에 박힌 공공개발이나 상업성만 좇는 민간개발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시설을 만들 수 있다.
파리시를 감싸 도는 외곽순환도로 위를 가로질러 짓는 ‘1000그루 나무(Mille Arbres)’도 수익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추구한 건물이다. 건물 아래위 빼곡히 심을 나무 덕분에 단순한 주거, 숙박시설이 아니라 ‘도심 숲’ 기능도 한다. 파리시는 공모작을 선정할 때 공공성, 혁신성에 가장 높은 배점을 줬다. 심사위원으로 건축 전문가뿐만 아니라 노벨상을 받은 수학자, 무용가 등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택했다.
도심 수십 곳에서 한꺼번에 사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공공시설이나 공유지 활용 방안이나 비용 문제를 도시 전체라는 큰 틀에서 바라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공유지 매매와 임대 하한가는 지역마다 다르다. 이를 엄격히 적용하면 수익성이 낮은 곳은 사업이 어렵다. 하지만 23곳 전체 관점에서 보면 수익성이 낮은 곳은 하한가를 더 낮추는 대신 높은 곳은 하한가를 올려 서로 보완하면 사업이 가능하다. 수익성은 낮지만 공공성이 높은 시설에 들어간 비용을 수익성이 높은 시설의 수익으로 보완하는 방식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 사업으로 중소규모 민간투자 모델을 새롭게 만들 수 있다. 기존 법 규정이 걸림돌이 된다면 개정을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댓글 0